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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10.31 14:08:23
  • 최종수정2023.10.31 14:08:23

박주영

시인·수필가

분주한 아침 일상에서 벗어나 국립 양로원으로 발길을 향한다. 바르게살기 회원들과 함께 동행했다.

양로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눈빛이 휑~한 어르신들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목발을 짚거나 휄체어에 몸을 의지하고있거나 절뚝거리며 걷는 분도 계신다. 그곳 두터운 벽면 안에 갇혀 초췌한 맘을 기대고 살아가시는 듯하다.

마치 섬에 갇힌 외로운 사람들처럼 무료함이 찾아들 때마다 과거의 꿈을 지우게로 지우고, 꾸역 꾸역 시간을 삼키고 계시는 듯 보인다.

무심하게 오도카니 앉아 계시는 어르신께 다가가 "안녕하세요?"

다정하게 인사드리자 공허한 설렘으로 허틋한 웃음 지으며 "당신이 누구여…"

내 손을 만지면서 가슴 아픈 설움을 삼켜 눈물을 글썽이신다.

체온을 같이 나누던 자식들과 헤어져 세월의 무게를 지탱하다가 쭈글하게 늙어 가는 새처럼 여윈 목이 슬퍼보인다.

유난히 말수가 작아 얌전한 어머니 한분 곁으로 다가갔다.

공손히 눈인사 드렸더니 나를 덥썩 껴안으면서

"왜 이제왔어? 내 딸아" 하시며 속울음 삼키신다. 치매를 앓고 계시는 것같다.

매일 미동 없이 서 있는 눈사람처럼 생사의 갈림길에서 한 줌 노을속에 얼굴을 파묻고 공허한 마음에 젖으셨으리라.

또 다른 남자 어르신께 다가가서 손을 잡아드렸다. 어느 한 곳만을 바라보며 싸늘한 무표정으로 털썩 주저앉아 계신다.

"아버님 어디 아프신데는 없으신가요?" "괜찮아 나 안아파요"

더듬거리며 애써 웃음짓는 모습이 천진스러우시다.

산 그림자 드리우는 저녘에 마음 갈피에 묻어두었던 말, 말들… 지난 날 배추전 몇장과 막걸리 한잔에 서로 이마 맞대고 의논하던 피붙이들과, 고락을 함께하며 품안으로 모여들던 자식들을 멀리 보내놓고, 기억으로부터 멀어지던 날, 누군가 아무도 환대하진 않아도 과거로 돌아가고픈 눈빛이 애처로우시다.

외롭게 앉아계시는 다른 어르신들 손을 일일히 잡아드리며 마음깊은 정을 느꼈다.

마치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난 듯 눈시울이 앞을 가렸다. 살아계실 때 더 찾아뵙지 못한게 한없이 죄스럽게 느껴졌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생각이 간절하다. 까마득히 먼 길을 돌아보면서 외로움이 더해지면, 마음속 촛불로 애절한 기도드리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홀로 남겨진 깊은 상처를 안고 무심한 겨울 밤을 홀로 지새우셨으리라. 나는 깊은 상념에 빠져있다.

그때였다. 빵빠레 같은 흥겹고 커다란 음악소리가 홀안에 울려 퍼졌다. 공연단 가수의 신나는 노랫소리가 들리면서 흥겨운 공연이 시작되었다.

유난히도 흥이 많으시던 친정 어머니 생각이 난다. 장고를 어깨에 메고 덩실덩실 춤을 추시던 내 어머니…. 지금은 우리곁을 떠나 하늘나라에 잘 계시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부모님 앞이라 생각하면서 신나게 노래를 불러드리고 춤을 추었다.

삼계탕 한 그릇으로 신선한 기운 머금고 좋은소리만 주워 담아 귀를 두텁게 세우시는 어르신들…. 맛나게 드신 후, 웃음꽃으로 빈 가슴을 채우고 마음이 동그레지신다.

어둡던 마음을 해빙시킨 파랑새처럼 활짝 웃으며, 하늘 닿도록 날고픈 소망으로 푸른 심장의 눈을 뜨시는것 같다. 여름 더위를 소담스럽게 받치는 듯 입가에 신선함이 넘친다.

꿈을 쫒아 생각을 깜박거리시다가, 아이들같은 눈빛으로 내 귀에 속삭여주셨던 그 목소리와 조용한 미소가 아름답다.

꽃같은 마음의 향기를 전해드리려 온갖 몸짓과 흥겨운 노래로 즐거웠던 나의 하루. 천사의 선물같은 자원봉사의 이날을 영원히 가슴속에 간직하리라 생각하며 그곳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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