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동두천 0.1℃
  • 구름많음강릉 4.3℃
  • 박무서울 1.5℃
  • 흐림충주 1.1℃
  • 흐림서산 3.5℃
  • 구름조금청주 4.5℃
  • 대전 6.7℃
  • 구름많음추풍령 4.5℃
  • 구름많음대구 6.9℃
  • 맑음울산 7.5℃
  • 구름조금광주 7.0℃
  • 구름조금부산 7.9℃
  • 흐림고창 6.8℃
  • 홍성(예) 5.8℃
  • 구름조금제주 8.0℃
  • 구름조금고산 12.6℃
  • 구름조금강화 0.9℃
  • 흐림제천 0.6℃
  • 구름많음보은 4.1℃
  • 구름많음천안 2.1℃
  • 구름많음보령 8.2℃
  • 구름많음부여 7.9℃
  • 흐림금산 7.3℃
  • 흐림강진군 5.8℃
  • 맑음경주시 8.0℃
  • 구름많음거제 8.1℃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24.02.04 14:51:52
  • 최종수정2024.02.04 14:51:51

박주영

시인·수필가

문득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내 어린 시절, 어머니는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복수초와 같았습니다. 그 꽃은 얼어붙은 땅속에서 납작 엎드려 추운 바람을 잘 이겨내지요.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밤새 가래 끓는 소리가 끊기지 않는 어머니 베갯머리에서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개 짖는 소리가 앞산에 컹컹 울려 깨어나 밖을 보니 보름달이 훤하게 떠 있었어요. 옆에 주무시던 어머니를 찾았으나 방안에도 마당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덜컹거리는 문고리를 잡아당기며 밖으로 나갔지요. 산밭에 계실 거라는 예감에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우리 집 개를 앞세웠습니다. 산길은 좁고도 꼬불꼬불했습니다. 앞장서 달려가는 개를 바삐 쫒으며 무서움에 쭈삣 머리끝이 서고, 능선을 기어오를 때 몸이 바들바들 떨렸습니다.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기도 하고, 바람 스치는 소리에 뒤를 슬쩍 돌아봤습니다. 보름달은 내가 천천히 걸으면 느리게 따라오고 빨리 걸으면 쏜살같이 내 뒤를 쫒았습니다. 달빛에 희미하게 보이는 어머니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 모습이 희끄무레한 게 마치 귀신같아서 섬뜩 놀랄 뻔 했지요.

"어무이, 어무이, 거기 있어?"

"응 여기 있어. 뭣 허러 왔냐 잉?"

목소리를 확인하고도 무서움을 이겨내기 위해 다시 큰소리치며 달음박질쳤습니다.

"어무이, 어무이"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안심될 때 쯤 등이 뚜렷이 보였습니다.

황토 흙 묻은 손을 치맛자락에 쓱쓱 털어내며 어머니는 두 팔로 번쩍 나를 안아줬지요.

"무서울 턴디 어떻게 왔냐? 잉"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우리 집 개가 꼬리를 흔들며 컹컹 짖어댔습니다.

참깨 밭에서 솎아낸 잡초더미 속에서 이런저런 걱정에 수심이 깊어지면, 밭고랑에 앉아 서늘한 바람으로 근심을 지우시던.

생의 집착이 유별나게 강하셨던 어머니는 찌들은 가난에서 벗어나려 무던히 발버둥 치셨지요. 휠 것 같은 허리뼈를 세우고 무릎 연골이 닳도록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어느 날, 자갈투성인 묵정밭을 보고 혀를 끌끌 차며 소맷자락을 걷어붙이셨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밭일을 해낼 작정이었지요.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산등성이 언덕 밭에서 한 뼘씩 밭을 일구기 위해 허기진 배를 움켜쥐었습니다. 낮에는 옷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다니며 방물장사를 하셨는데, 그 어려운 삶의 고갯길에서 얼마나 힘들었을 까요! 그렇다고 밭을 그냥 내버려두면 쑥대밭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비록 고난을 짊어진 어깨가 힘에 부쳤지만, 다부진 푸른 꿈을 놓지 않았던 당신이셨습니다. 그 뒤 애써 가꾼 농사를 망칠까봐 노심초사 하시며 새벽마다 산밭으로 가시곤 했습니다. 참깨 밭에서 솎아낸 잡초더미 속에서 이런저런 걱정에 수심이 깊어지면, 밭고랑에 앉아 서늘한 바람으로 근심을 지웁니다. 다시 얼굴 내미는 풀들을 뽑아내며 질퍽하게 땀에 젖어 집으로 돌아와서는, 나무토막처럼 쓰러지곤 하셨습니다.

몸에서 진한 땀 냄새가 났지만 식구들의 힘 같은 그 냄새가 싫지 않았습니다. 산 밭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어서 고것들에게 질만도 한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잘 가꿔 놓은 우리 밭을 바라보며, 묵묵하고 둥그런 마음 씀씀이가, 마치 후덕한 종갓집 맏며느리 같다고 하셨습니다.

가을이 돌아왔습니다. 사각사각 수수 베는 소리가 들리는 밭에서 또 하루를 꼬박 보낸 뒤, 틈나는 대로 떨어진 수수이삭을 줍고 논에 떨어진 벼 이삭을 주우러 다니시던 어머니. 나는 간절하게 휴식을 원했지만 한사코 거절당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시는 말씀은 "먹을 곡식을 버리면 천벌 받는 것이여."

어쩌다가 내가 들꽃을 꺾어다 놓으면 "우리헌테 꽃이 무슨 소용이여! 그거 보고 있으면 밥이 나온다냐?"라고 하셨습니다. 자투리 시간도 노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오늘따라 달빛까지 아끼시던 어머니가 몹시 보고 싶습니다. 마음 속에 먼저 떠오르는 둥근 달, 유난히 보름달이 훤한 날에는 습관처럼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정대철 헌정회장 "개헌 방향 '정쟁 해소'에 초점"

[충북일보] 대한민국헌정회(회장 정대철)는 27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박물관 대강당에서 '정치선진화를 위한 헌법 개정 대토론회'를 개최한다. 헌정회는 지난해 11월부터 헌법개정위원회를 구성해 개헌의 방향에 대한 연구를 통해 국가 100년 대계 차원의 조문을 만들었다. 이 연구에 이시종 전 충북지사도 참여했다. 정대철 회장은 "정쟁을 해소하는데 개헌의 방향의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헌정회가 개헌안 마련에 나서게 된 배경은. "헌정회는 오늘날 국민적 소망인 정치권의 소모적 정쟁 해소와 지방소멸·저출생 등 국가적 위기 상황에 적극 대처하는 것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에는 이러한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구 유럽처럼 정쟁을 중단시키는 장치인 내각불신임·의회 해산제도 없고, 미국처럼, 정쟁을 중재·조정하는 장치인 국회 상원제도 없다보니, 대통령 임기 5년·국회의원 임기 4년 내내 헌법이 정쟁을 방치 내지 보장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헌법개정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서 헌정회가 헌법개정안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동안 헌법개정은 여러 차례 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