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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10.03 15:20:08
  • 최종수정2023.10.03 15:20:08

박주영

시인·수필가

하늘에서 빗물을 50일째 쏟아 붓고 있다. 햇빛을 잃어버린 복숭아 나뭇잎들이 멍들어 "숭숭" 구멍이 뚫렸다.

흐린 날은 계속 이어지고 외바람과 장대비에 벌러덩 누워버린 수령 깊은 고목나무들… 나무줄기 갈라지는 소리가 "쩌억쩌억" 내 마음속에 들리고, 고목나무 우둠지에 빗물이 또 고인다.

간간히 먹구름이 놀다간 자리에 천둥과 벼락이 찾아와 내 마음을 때리며 지나가고, 대지로 쏟아져 내린 물줄기는 도랑물 되어 밭고랑으로 흐른다.

태양빛은 먼~나라로 영영 사라져버렸나? 하늘의 눈이 뻥~ 뚫려버리기라도 한 건가? 나는 폭풍의 물세례로 하루하루 장화를 신고 첨벙거린다.

병충해와 균들이 득실대는 척박한 땅바닥엔 잡풀만 무성하고, 청개구리들이 떼 지어 "팔짝팔짝"거린다. 나는 근육 풀린 허리 통증을 끼고 살면서, 일손을 마치고도 노동은 중단 없이 이어지고, 혓바늘이 돋는다.

얼어붙은 복사꽃이 수정도 덜된 채 겨우 상처가 아문자리에, 비가 몰아쳐 속으로 울고 있는 아직 덜 익은 열매들… 대지의 온갖 생명들이 힘없이 땅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고목은 죽어가는 가지에서도 '생존의 법칙'과 '종족 보존의 원칙' 앞에서 생명의 심지를 키운다. 몸통이 잘려 나간 아픔을 참아내며 나무껍질을 기둥에 붙이고 매달려있다. 그런 상황에도 이파리들을 자식 품에 안듯 살려내고 과실을 키워서 붉으레한 얼굴을 "대롱대롱" 매달고 있다. 살아남은 세포들이 뿌리와 교신을 나누며 자기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가련하고 대견스럽다.

오늘도 나는 비 그친 하늘 조각구름 사이 햇빛을 기다리며 스스로 위안 받는다. 목숨처럼 하늘을 받들어서라도 새날이 밝아오면, "쩌렁쩌렁" 소리치며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듬으리라. 그렇게 목줄이 타들어가던 어느 날, 드디어 파란 하늘에 맑은 구름이 "둥둥" 떠다니더니 햇살이 온 대지를 비추었다.

다음 날 맑게 개인 아침이 밝았다. 기운을 잃어가던 살아있는 모든 나무와 식물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하늘이시여!! 햇빛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찬란한 햇살 앞에 오롯이 일어서는 존재들에게 경건함을 느낀다.

태양은 하루를 서둘러 서산에 지고 밤마다 내 맑은 눈 속에는 희망의 밝은 달이 떠올랐다. 밤마다 비에 젖었던 마음을 "고슬고슬" 말려 초저녁 잠자리에 든다. 하루 종일 힘에 부첬던 몸을 방바닥에 눕히며 넉넉한 미소를 머금는다.

햇빛을 향한 심오한 열망이 식어갈 때 쯤, 거목이 쓰러진 자리 상처위에 새살이 돋고, 예민한 가지 끝에 닿을 듯 "도랑도랑" 매달린 복숭아 열매들이 볼그레하게 익어간다

시집 보내주길 기다리며 연지곤지 찍고 있는 복숭아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

어느 날이었다. 복숭아들이 빗속에서도 익어 불그스레한 몸을 땅바닥에 떨구었다. 때를 놓치면 물러버릴까봐 비옷을 입고 따게 되었는데, 나뭇가지를 들쳐가며 바닥에 엎드려 따낼 때, 톡 톡 떨어지는 빗소리와 똑똑 나뭇가지에서 떼어내는 소리가 아름다운 음악처럼 느껴졌다. 제일 크게 자란 것들을 두 손 받들어 바구니에 따 담던 행복감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오늘도 남루하게 걸친 헐렁한 작업복 한 벌로 족한 하루를 나무들과 함께 보내고, 여유로운 깊은 숨쉬기를 반복한다. 앞으로도 가난한 영혼을 살려 정신을 씻어내는, 복숭아 키우는 작업을 결코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복숭아나무 숲에 들어가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듯, 그 여유로움을 즐기며 환한 미소 띄운다. 지난날 헛된 망상을 접고 가을볕을 가슴으로 안으며 풀잎 곁에 조용히 앉는다. 마음속을 푸르게 빗질해주는 복숭아밭을 가꾸며 나무들과 친구삼아 마음의 대화를 나눈다.

오롯한 정적에 안겨 교감하는 감흥에 젖고 무심한 평온에 오랫동안 잠긴다.

마음아 고요해져라~ 고요해져라~

홀연히 깊은 명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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