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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10.26 17:02:54
  • 최종수정2020.10.26 20:00:23

자영

화림전통음식연구원

우리말의 양념에 해당하는 향신료는 열매, 씨앗, 꽃, 뿌리 등을 이용해서 음식의 맛과 향을 북돋거나, 색깔을 내어 식욕을 촉진하는 식물성 물질을 말한다. 향신료는 서로마 시대에 사용한 후기 라틴어로 '약품'이라는 뜻이다.

그 당시 서양의학에서 모든 병이 악풍에 의해 발생한다고 믿었고 악취, 즉 썩은 냄새를 없애려면 향신료를 사용해야 한다. 또 향신료는 귀신을 쫓는 약으로도 사용됐다. 특히 13세기 말, 이탈리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방문하고 쓴《세계 불가사의의 서》를 계기로 향신료 획득 전쟁까지 전개됐다. 15세기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도착이나 1498년 5월 인도에 도착한 바스쿠 다가마의 선원들이 "그리스도와 향신료를 위하여"란 축배를 든 것과 16세기 마젤란의 세계일주 등 그 목적은 오직 향신료를 구하기 위한 것으로, 이후 유럽인들의 세계 식민지화가 시작됐다.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마늘ㆍ생강ㆍ갓ㆍ후추ㆍ고추ㆍ겨자 등 향신료와 풍미가 좀 다른 파는 동양 음식의 전골과 국에 양념으로 빠져서는 안 되는 향신 채소이다. 음식의 향취를 돋우고 해산물의 비린내와 육류의 누린내를 없애 주는 기본양념이다.

파의 원산지는 중국 서부의 파미르고원인데, 한나라 때 산비탈에 야생파와 초목이 짙푸르게 우거져서 '총령(蔥嶺)'이라 불리면서 알려졌다. 중국 고대 삼황제 신농씨의《약경》에 처음 등장하는 파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재배 역사는 3천 년 이상 된다. 실제 생활에 등장하는 것은 공자가 편찬한《예경》에 "군자를 위하여 파(葱)ㆍ염교를 다듬을 때는 양쪽 끝을 가지런하게 자른다"라고 했다.

4세기경의《능가경》에는 파를 총(蔥), 401년경 후진 때의 쿠마라지바가 번역한《범망경보살계본》에는 혁총(革蔥)이라 기록하고, 불교에서 도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오신채를 기피한다고 했지만, 오신채 중에 대파는 '신선의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사계절 푸른 파는 중국 동진 때 갈홍의《주후방》과 당나라 때 맹선의《식료본초》, 652년 손사막의《천금방》에는 "파의 잎과 줄기와 파즙과 파의 뿌리는 모두 약용으로 쓰인다"라고 기록되었다. 6세기《제민요술》에는 파 품종과 재배법이 있어 널리 식용한 것으로 기록됐다. 송나라 때 도곡의《청이록》에는 모든 재료와 잘 어우러지게 하는 작용이 있다고 하여 '화사초(和事草)'란 별명을 붙였다. 명나라 때 이시진은《본초강목》에서 총이라 적고, 호총 등 외래종과 구분하기 위해 한총(漢蔥)이라 하여 그 재래종임을 나타냈다.

통일신라 시대에 전래, 재배된 파는《고려사》와《고려사절요》에 1131년 음양회의소에서 "서울과 지방의 사찰의 승도들이 술을 팔고 파(葱)를 팔기도 한다"라며 술안주로 이용되고 있었다. 고려의 이규보는《동국이상국후집》<집안 채소밭의 여섯 노래>에서 파는 아이들의 놀이도구인 호드기와 술자리의 안주, 비린 국에 넣는 조미료와 같은 용도를 노래했다. 1236년《향약구급방》에는 마늘, 파(葱), 겨자, 박하, 생강 등 향신료로 분류할 수 있는 향미 식물이 약재로 기록했다.

파 재배에 대한 기록은 조선 세종 때 전순의의《산가요록》에 파씨(蔥實)를, 효종 때 신속의《사시찬요초》에는 파 재배법을 기록해 놓았다. 1960년대 GMS 계통의 육성이 시작되고, 1974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교배종 파 품종이 나오면서 전국적 재배가 이루어졌다. 도를 닦는데, 금기음식으로 통하는 오신채 제1번의 파는 주로 김치와 각종 요리의 양념으로, 또 육류소비가 증가하면서 소비량이 늘고 있다. 열량이 적은 파는 비타민A, B1, B2, C 등과 무기물의 함유량이 많은 건강 채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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