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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름음식 '우무냉국'

대장경 속의 음식이야기

  • 웹출고시간2018.08.20 18:04:36
  • 최종수정2018.08.20 18:04:36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쇠가 녹고 돌이 녹아 흐른다'는 불볕더위에 임금, 천하장사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요즈음 옛 선인들의 피서백경이 각광을 받는다. 웰빙 피서법을 배우겠다는 의미에서다. 에어컨, 냉장고 등이 없던 시절에는 자연 피서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산 정약용은 더위를 식히는 8가지 방법과 더위를 피하는 8가지 방법을 고안하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은 냉국을 비롯해 화채, 미숫가루 등과 삼복에 쑤어먹던 팥죽인 복죽(伏粥)도 여름철의 대표 음식이었다. 우뭇가사리로 만드는 우무냉국도 무더위를 이겨내는 음식으로, 조선의 정조 임금도 더위를 식힐 때 우무냉국을 즐겼다고 한다.

우무냉국 또는 냉채는 해초인 우뭇가사리를 끓여 굳혀서 만든 우무묵을 얇게 채 썰어 콩물이나 냉국에 혼합한 음식이다. 식이섬유가 풍부해 다이어트에도 효과 만점인 해조류 음식이다. 바닷가 모래나 바위에 붙어살며 나뭇가지 모양을 한 우뭇가사리는 한방에서 석화채(石花菜), 감함(甘鹹)으로 부른다. 제주에서는 우미 그리고 천초(天草), 한천(寒天), 까사리, 가사리 등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그 모양이 '소의 털'과 비슷하다고 해서 우모(牛毛), 우모초라 한다.

중국 송나라 시대에 유행한 지장품(紙匠品)에도 석화채 즙을 발라 말린 고려의 종이가 고가에 수출되어 사용되었고, 1080년에는 고려의 국가선물로 전해졌다고 한다. 이같이 우무가사리는 생활용품에도 사용됐다. 명나라 때의 소설 '서유기'에도 석화채 요리가 나온다. 그것이 우무가사리인지는 분명하지 않는다.

조선 세종 7년(1425년)에 편찬되기 시작한 '세종실록지리지'에 보면, 울산 기장현의 '토공(土貢)으로 우모(牛毛) 등이다'고 하여 우뭇가사리가 처음 기록되었다. 또 세조 때에는 국가의 구황식품으로도 여겼다. 또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진도 특산물로 소개되었다. '홍길동전' 저자인 허균이 1,611년에 지은 '도문대작'에서는 "바닷가에서 나는 해초에 우모(牛毛)라는 것이 있는데, 열을 가하면 녹기 때문에 그 성질을 이용해 묵으로 만든다."고 하여 그 유래를 언급한 바 있다.

특히 1814년 정약전이 저술한 '자산어보' 에는 '해동초(海東草)'라 기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나는 바다의 풀로 그 모양새와 제조방법까지 적었다. 실학자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는 "우뭇가사리를 깨끗이 씻어 쌀뜨물에 3시간 담갔다가 약간 끓여 대야에 옮겨 담고 짓이겨 다시 솥에 넣어 끓이며 찌꺼기를 제거한다. 응고된 것을 알맞게 썰어 죽순, 버섯, 무, 생강, 상치, 미나리 등을 잘게 썰어 쟁반에 담고 초장을 쳐서 먹는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족편이다."라고 우무묵인 수정회(水晶膾)를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을 적었다.

일제강점기 때의 최영년은 '해동죽지'에서 "우모초(牛毛草)는 해마다 여름이면 남해안에서 생산되는데 우뭇가사리로 투명한 우무포(牛毛泡)를 만들어 궁궐에 진상하며, 묵을 가늘게 썰어 초장을 쳐서 냉탕으로 만들어 마시면 상쾌하기 때문에 더위를 씻을 수 있고 갈증도 덜어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시로 "해천(海天)은 쇠털처럼 생긴 풀로, 끓여서 묵을 만들면 흰 기름 같아서. 국물과 함께 마시면 가슴까지 시원해, 탄성이 나무꼭대기까지 올라간다."고 우무묵을 예찬했다.

겔(Gel) 상태의 탱그르한 질감이 생명인 우무묵은 차갑게 만들어 입속으로 호로록 빨아들일 때의 찰랑거림과 바닷내음이 날 때가 제 맛이다. 또 국이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하는 이들에게 여름철의 국으로도 우무냉국이 제격이다.

우뭇가사리는 바닷말의 일종인 해인초(海人草) 즉, 다시마(昆布)와 마찬가지로 옛날부터 천연 구충제로도 이용되었다. 그래서인지 "여름철에 우무냉국을 많이 먹으면 뱃속 구충을 없앤다."는 말까지 전해진다. 그러나 차가운 성질을 가진 우뭇가사리는 맥이 약하고 소화력이 약한 분들이나 특히 임산부가 많이 먹으면 태아의 체중이 늘지 않는다고 알려져 금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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