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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10.11 15:41:40
  • 최종수정2017.10.11 15:41:40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우리들은 점심이나 요깃거리로 먹을 것이 만만치 않을 때, '국수나 먹지'라고 한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국수란 말만 들어도 신물부터 올라오던 시절도 있었다. 그야말로 가난의 상징과도 같은 음식이다.

국수는 원래 그리 녹녹한 음식이 아니다. 밀 재배가 어렵던 옛날에는 쌀보다 밀가루가 더 귀하고 비쌌기에 성인, 결혼식 등에서나 먹을 수 있던 고급음식이었다. 밀 대신 메밀을 키워 녹두전분 등과 섞어 면으로 뽑아 먹었다. 이것이 막국수, 평양과 함흥냉면 등이다. 개화기 때 국수는 일본에서 제분기술이 유입되고 값싼 밀가루의 대량 반입으로부터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쉽게 여기는 국수는 "밀가루(白麵)는 백 년 동안 배워야 한다"고 할 정도로 면 요리의 본고장 중국에서조차 종류만 수백 가지가 넘는다. 밀가루 등을 반죽하고 얇게 밀어 가늘게 썰거나 틀에 눌러 길게 뽑아낸 면을 다시 삶아 찬물에 헹구어 움켜 올린 것을 국수라 하는데, 중국과 달리 쌀로 만든 떡을 병(餠), 국수를 면(麵)이라 한다. 정약용이 쓴 '아언각비'에서 밀가루(麵屑)는 곡물가루 중에서 가장 좋다는 의미로 진말(眞末), 메일가루는 목말(木末)로 구분했다.

기원전 7천 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전해진 다음, 세계로 전파된 국수는 중국의 고대농서인 '제민요술'에 쓰인 '수인병(手引餠)'이 최초이다. 삼국시대부터 면을 먹던 우리나라에는 송나라 사신인 서긍이 1천123년에 쓴 '고려도경'을 통해 알 수 있다. 여기에서는 "음식은 10여 종인데 국수가 으뜸이다", 또 "면 가격이 대단히 비싸므로 큰 잔치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하여 국가행사에만 사용한 접대식이자 수입된 희귀곡물이었고, 1390년 공양왕 때 제정한 제례의 제물규범과 충렬왕 때 면을 금했던 사실로 보면 일부 귀족들만이 먹을 수 있던 별미식, 민가의 혼례에서 국수 먹는 풍습은 고려 말에 생겨났다고 한다.

'고려사'에 "제례에 면을 쓰고, 사원에서 면을 만들어 판다"는 것은 국수가 널리 퍼진 것을 알 수 있고, 또 14세기 중엽 중국 원나라에 유학한 목은 이색(李穡)은 어느 절에서 "떡(국수)을 적게 내니 스님의 웃음이 적어라(僧笑小來僧笑小)"고 한 말이 조선 중기의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에 전하는 것으로 보아 국수가 이미 '승소(僧笑)'란 이름으로 사찰에서 통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스님들은 별식으로 떡이나 국수를 좋아하는데 이를 '승소'라 했다. 먹는 즐거움조차 금지하는 구도자에게 흔히 먹을 수 없던 별미(국수)를 먹는다는 즐거움만으로 미소 지게하고 또 먹은 뒤에 찾아오는 포만감에 저절로 미소가 생겨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늘로 국수를 만든' 조선 후기의 진묵대사 이적(靈蹟)과 달리 '고려대장경'에는 국수가 없다. 제불보살들이 면, 병(餠) 등을 공양 받았던 기록은 수없이 등장한다. 대장경이 만들어진 후에 국수란 용어가 생겨난 점과 탁발(乞食)하는 수행자에게 국수는 주는 이와 받는 이, 모두 보관과 먹는 음식(供養)으로 적당치 못한 사례이다. 세계인들이 가장 즐겨먹는 국수가 한국에서는 라면에 밀려 반찬 등의 보조음식으로 자리하지만, 예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던 별미(別味)의 대명사였다. '농가월령가'에는 시월의 음식으로 기록하여 추수가 끝나고 찬바람이 생겨날 적에 먹던 별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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