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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2.17 17:50:15
  • 최종수정2020.02.17 17:50:15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유채(油菜)는 새봄을 알리는 전령사다. 봄을 알리는 꽃 중의 하나로 꼽힌다. 어떤 이는 들판을 노랗게 물들이는 겨울꽃이라 부른다. 겨울에도 얼지 않아 나물 해 먹는다고 겨울초 또는 삼동추, 한채ㆍ월동초라 한다. 꽃봉오리가 맺히기 전 여린 잎은 쌈채소, 국, 무침, 겉절이 등으로 먹지만 유채꽃은 식용하지 않는 편이다.

유럽 지중해가 원산지인 유채는 야생종 배추와 양배추의 자연교잡 종인데, 1935년 우장춘의 논문에서 '종의 합성'이 밝혀졌다. 노란색 꽃이 피며, 종자는 기름으로 짜 쓰면서 유채란 이름이 붙여졌다. 우리말로 '평지'라 하는데, 1610년 허준의《동의보감》에 '운대'라 적고, 한자의 음훈 그대로 평지나물이라 부르고 쓴 것이다. 제주에서는 씨에서 기름이 난다하여 지름나물, 특히 경북에서는 시나나빠라 부르기도 하지만, 경상도 방언이 아니라 일본어를 무작위로 쓰면서 생긴 말이다.

꽃말이 쾌활, 명량, 희망을 뜻하는 유채는 1830년대 최한기의《농정회요》에서 운대라 적고, 일명 유채라는 이름이 처음 기록됐다. 그는 당나라 소경의《당본초》를 인용하여, "운대는 일명 한채, 일명 호채, 일명 대채, 일명 대개, 일명 유채이다. 줄기가 하나인데 둥글고 기름지며, 담청색으로 잎이 줄기 위에 붙어 있는 모양이 백채와 같다. 여릴 때 볶아먹을 수 있으며, 쇠하고 나면 줄기 끝에 꽃이 피는 것이 무와 같다"라고 했다.

기원전, 중국으로 전래한 유채는 후한시대 복건의《통속문》에 서역으로부터 온 채소라는 '호채'라고 처음 기록했다. 658년 당나라의 소경이 편찬한《당본초》에 운대라 하고, "운대채는 요새 밖에 운대(雲臺)가 있어서 수자리 국경을 수비하던 곳인데, 처음으로 이 나물을 심었기 때문에 이름을 운대이다"라고 하였다. 당대의 손사막은《비급천금요방》<식치>편에서 운대자, 청채자 등 씨앗을 처음 기록했다.

송나라 때 구종석이 1116년에 편찬한《본초연의》에는 "운대는 향기가 심하지는 않지만, 겨울이 지나도 뿌리가 죽지 않으며, 좀을 물리친다. 채소 중에서 그다지 맛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이미 사람들이 먹는 채소"라고 했다. 송나라 때 육전의《비아》에는 태채, 원나라 때의 위역림이 편찬한《백병방》에는 한채라 했다. 명나라 때 이시진의《본초강목》에는 운대채, 청나라 때 왕사웅이 편찬한《수식거음식보》에서는 청채라 했다.

16세기 명나라 때 우리나라에 전래한 유채는 허준이 1610년에 편찬한《동의보감》<잡병>편에서 운대란 한자명과 같이 '평지'란 한글명을 처음 기록했다. 조선 숙종 때의 실학자 홍만선은《산림경제》에서 운대를 재배한다고 했다.

구한말, 1830년대에 최한기의《농정회요》에서 유채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했다. 일본에서는 1860년대 초기에 신귀화식물로 분류하고, 구주유체라 쓰며, 모두 종자로부터 기름을 얻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9세기 초까지 유채란 명칭보다는 평지나물로 부르고 썼다. 그 후 왜배추 등으로도 불린 유채는 1962년부터 유료작물로 본격 재배됐다. 들깨, 해바라기, 올리브, 동백, 피마자 등과 같이 기름을 채취할 목적으로 재배하는 작물의 하나였다. 유채 기름은 식용보다는 등잔과 같은 실용 연료로 더 이용됐다.

요즈음 인기가 있는 카놀라유는 유채꽃에서 압착, 추출한 식용유인데, 그 맛이 담백하고 향긋하다. 유채꽃의 전설은 약 600년 전 이집트의 마할라마을 목동 헤잠이 양피지에 쓴《헤잠의 일기》에 전하는 "사랑한다면, 지금 말하라. 내일이면, 그 사랑이 남이 되어 버릴지 모른다"라는 말이 이집트 젊은이 사이에서 유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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