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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3.04 17:31:22
  • 최종수정2019.03.04 17:31:22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

예로부터 우리 밥상에는 고기보다 갖가지 채소와 나물이 올랐다. 요즈음에는 건강식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는다. 조선 중기의 미암 유희춘은《신증유합》에서 "나물은 향기롭고 신선한 먹을거리다"고 했다.

옛날의 명성이 뒤바뀐 것도 많다. 김과 매생이, 무와 무청, 통배추와 봄동을 보면 그렇다. 푸대접받던 시래기도 근래에 와서야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 더 건강하게 가꾸는 일이란 웰빙의 우리말인 '참살이' 열풍에 의해서다.

시래기는 한자로 청경, 지축이라 쓴다. 무청이나 배춧잎을 새끼 등으로 엮어 끄덕하게 말린 것이다. 우거지는 배춧잎 등 푸성귀를 다듬을 때 골라놓은 겉대 또는 윗부분을 말한다. 시래기는 말린 것인데, 씨줄처럼 줄줄이 엮은 모양을 가리킨다. 우거지는 겉 부분을 가리키는 '웃걷이'라 한다. 대관령 무청 시래기가 유명하지만, 김장철에 무청을 갈무리해 둔 시래기도 사시사철 좋은 찬거리가 된다. 가마솥에 오랫동안 푹 삶아 찬물에 우렸다가 반찬으로 만든 시래기는 구수한 맛과 향이 일품이다. 눈으로는 거칠 것 같은데, 먹을 때 느껴지는 특이한 부드러운 식감은 먹는 자만의 특권이자 덤이다.

푹 삶은 시래기를 썰어 들기름에 지긋하게 볶은 나물과 찌개, 들깻가루를 풀어서 끓인 시래깃국은 젊은이들이, 묵은 된장을 풀어 끓인 국이나 간간하게 버무린 시래기나물은 연장자가 선호한다. 그 중심에는 구수한 맛이 자리한다. 쌀뜨물로 국물을 하면 시래기가 더 부드럽고 국 맛이 더 구수해진다. 시래깃국에는 육류보다 멸치, 홍합살을 부숴 넣고 끓여야 제맛이 난다. 콩깍지나 무 등을 넣고 끓인 소죽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육류에다 곁들인 시래기 맛은 추억의 레시피이다.

시래기는 마른나물 모둠을 가리키는 '지축(旨蓄)'이라 처음 기록됐다. 기원전 6세기경 편찬된《율장》<십일조 괴생종계>에는 식물 종자의 하나인 경종으로 기록했다. 일종의 말린 나물(莖種菜) 또는 마른 채소로 거친 음식으로 보았다. 기원전 470년 편찬된《시경》<곡풍>에는 "내가 마른나물 장만하는 것은 겨울을 넘기기 위한 것이네"라며 시래기를 지축으로 처음 기록했다. 또 시래기의 원재료인 무청을 뿌리와 줄기를 다 먹을 수 있는 무 채소(葑菲)라고 했다.

중국 서진의 진수가 290년 쓴《삼국지》에는 "유비가 무청을 심는다"고 시래기를 적었다. 양나라 도홍경의《신농본초경》과 당나라 이적의《당본초》, 명나라 때의 난무가 편찬한《전남본초》에도 무청을 기록했다. 명나라의 이시진은《본초강목》에서 "옛사람들이 무청과 내복(萊挘)을 혼돈하여 썼다"며 무와 무청을 구분했다.

4세기말 고구려에 전래되어 재배하게 된 무는 고려시대에 아주 귀한 채소로 취급되었다. 1487년《성종실록》에는 "백성들이 시래기와 감자나 밤으로 이어가고서야 겨우 한 해를 넘길 수 있다"고 했다. 실학자 이익은 시래기를 지축으로 적었다. 1690년대 김진규는《축천집》에서 "시래기 나물죽을 먹었다"고 시래기를 청경(菁莖)이라 처음 적었다. 조선 말기까지 공문서와 문집에도 지축으로 기록됐다.

1917년 방신영은《조선요리제법》에 "시래기는 푸른 무청을 새끼 등으로 엮어 겨우내 말린 것이다"고 했다. 1924년 이용기는《조선무쌍신식용리제법》에 시래기국을 청경탕과 시래기나물로 기록했다. 1922년 염상섭은《만세전》에서 "일 년 열두 달 죽도록 농사를 지어야 반년 짝은 시래기로 목숨을 이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으니까. …"라고 시래기를 배고픔으로부터 구해 준 음식으로 적었다.

비타민C가 풍부한 시래기는 예로부터 정월 대보름날 절기 음식이었다. 겨울이면 으레 처마 밑에 주렁주렁 엮어 매달렸다. 바람과 햇살에 말리는 시래기 풍경은 잔뜩 찌푸린 얼굴을 가리키는 우거지상이란 말까지 낳았다. 무청 시래기국 한 그릇으로 정신건강에 이로운 웃음의 활력소를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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