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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의 식물음식 '참깨와 들깨'

대장경 속의 음식이야기

  • 웹출고시간2019.10.14 16:50:17
  • 최종수정2019.10.14 16:50:17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세상에는 서로 겨루는 라이벌이 많다. 이름에서나 모양에서 더욱이 게임이나 경기에서의 맞수는 흥미와 경쟁력을 덧붙인다. 참깨와 들깨는 사람들이 붙인 이름일 뿐인데, 그 쓰임새로도 맞수로 인식되고 있다.

통칭해서 '깨'라고 부르지만, 식물학적으로 참깨와 들깨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참깨는 인도와 이집트가 원산지이고, 들깨는 만주 등 극동아시아가 원산지다. 참깨는 통으로 볶거나 가루로 빻아 깨소금으로 먹는다. 들깨는 주로 가루를 내서 감자탕, 순댓국에 많이 사용한다. 참깨잎은 먹지 않는데, 들깻잎은 생으로나 데쳐서 나물로 먹는다. 참깨를 볶아 짜면 참기름(麻油)인데, 고소한 맛과 향이 오래 간다. 들깨를 짜면 들기름(荏油)으로 볶지 않은 상태로 짠다.

흔히 몹시 재미가 있을 때 "깨가 쏟아진다"는 말에는 참깨를 가리키지만, 식용으로 먹는 깻잎은 들깻잎이다. 몹시 통쾌하다는 뜻으로 "깨소금 맛"이다. "들깨 모는 석 달 열흘 가뭄에도 침 세 번만 뱉고 심어도 산다"라는 것처럼 들깨는 마름견딜성이 강해서 심한 가뭄에도 자라서인지 "참깨는 가문 해에 풍년 든다." 또 "깨는 불을 담아 부어야 풍년이 든다"고 불볕더위가 기성을 부린 가뭄에 오히려 잘 된다고 하는 속담까지 생겼다.

오천 년 전부터 중국에서 참깨를 이용하고, 우리나라에서도 기원전부터 재배해 왔다. 참깨는 호마(胡麻)·거승(巨勝)·진임자(眞荏子) 등으로 부른다. 기원전 1세기《신농본초경》에는 호마, 거승으로 처음 적고, 서역에서 들어온 검은깨라고 불렀다. 원나라 이붕비는《삼원연수서》에서 흑지마(黑芝麻)라 적고, "오래 묵은 들기름은 산패되어 병든 사람은 오래된 기름을 먹지 말라"고 했다. 명나라 때 이시진의《본초강목》에는 거승(검은깨), 마갈(麻秸, 줄기), 청양(靑蘘, 잎사귀)으로 적었다.

들깨는 중국 후한 말에 화타가 들깻잎을 '자서(紫舒)'라고 처음 이름을 붙였다. 그 후 '자소(紫蘇)'라 부르던 것으로 자색(보라색)이 나는 깻잎을 가리킨다.《신농본초경》에는 소엽(蘇葉), 소자(蘇子)로 기록하고,《명의별록》에서는 임(荏), 임자(荏子)라고 적었다. 명나라 때 서광계의《농정전서》에는 "깻잎은 날로도 먹는데 생선과 함께 국을 끓이면 맛이 좋다"고 했다.

이처럼 별개의 두 곡물은 원래 이름대로 야생깨를 지칭하는 들깨였지만, 그 역할도 엇비슷해서 모두 깨라고 불렀다. 임(荏)이라 표기한 들깨의 기름은 그 후에 전래된 참기름보다 질이 좋지 않아서 참깨를 선호하게 되고, 또 통일신라 때부터 전국적으로 재배된 곡물을 구분하도록 참깨는 '진임자(眞荏子)'로, 들깨는 '야소(野蘇), 백소(白蘇)'라고 불리게 됐다. 비록 참깨에 밀려서 그 이름까지 내준 들깨이지만, 그 재배역사는 참깨보다 더 오래됐다.

1429년에 편찬된《농사직설》에서 들깨는 "유마의 원래 이름은 수임자"라 하고, 참깨는 "호마의 향명은 진임자이지만, 대완국(大宛國)에서 기원한다"고 소개했다. 세조 때의《식료찬요》에는 "깻잎은 좋지 않은 냄새를 제거해줄 뿐만 아니라 속을 다스리는 데 좋다고 했고, 소화를 도우며 속을 따듯하게 만들어 몸을 보호한다"고 했다. 깻잎은 같은 무게의 시금치보다 두 배 이상의 철분을 함유하고 있어 빈혈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육식에는 상추보다 사실 깻잎을 싸 먹을 때가 궁합이 더 좋다.

우리네 식탁과 만주의 명절인 절량일에 먹는 efen(ᡝᡶᡝᠨ) 요리에는 깻잎을 사용하지만, 동양의 향료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외국인과 처음 먹는 사람에게 깻잎의 향과 맛은 쌩 고역이다. 향도 진하지만, 상추에 비해 거친 느낌이 있어 먹던 일로 트라우마까지 있는 분들도 있다. 개성지역을 제외한 북한과 중국에서도 깻잎을 거의 먹지 않는다. 또 들깨는 염소와 고라니 등 초식동물이 먹지 않고 싫어하는데, 콩밭 주변에 깨를 심어 녀석들의 콩서리를 예방하는 친환경적인 방어벽이었던 셈이다.

또 들기름은 무쇠솥 첫길들일 때나 등잔불 기름으로 쓰여 왔으며, 한지 장판을 비롯해 옷칠 대용으로 보존 및 광택을 내는데 사용했던 전통생활의 필수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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