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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음식 '유미죽'

대장경 속의 음식이야기

  • 웹출고시간2017.09.06 13:59:36
  • 최종수정2017.09.06 13:59:36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옛말에 '식은 죽 먹기다'는 손쉬운 일이나 가벼운 노력을 나타낸 표현이다. 죽(粥) 먹는 것을 하잖게 보는 일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일상에서 힘들 때나 기력이 쇠진한 상태에서 먹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세계 3대 성자로 꼽히는 부처님, 즉 고타마 싯다르타(瞿曇悉達多)가 6년간 설산 고행을 마치고 처음으로 먹은 음식이 바로 죽이다. 인도의 우루벨라마을 네란자라(尼連禪河) 강변에서 마을소녀인 수자타(Sujata)로부터 받은 유미죽(乳糜粥) 한 그릇으로 원기를 회복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그 때 나이가 35세로 석가족의 성자를 뜻하는 석가모니(釋迦牟尼)가 되었다.

'고려대장경'에는 약 2천400여 곳에 이를 만큼 죽에 관해 언급되었고, '부처님이 유미죽을 드셨다'는 내용은'본행집경(25권)'등 여섯 종류의 경전에 수록되어 있다. '인과경(3권)'에 보면, "하늘에서 천자(天子)가 내려와서 소를 치는 여인에게 숲 속에 있는 보살에게 공양물을 바치라고 권하였다. 이 여인은 이 말을 듣고 자못 기뻐하여 유미(죽)를 바쳤다"고 한다.

수행자인 싯다르타가 죽을 드실 때의 모습은 "몸이 나날이 쇠약해져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정수리에는 부스럼이 생기고 피부와 살이 저절로 떨어져 나갔다. 내 머리는 깨진 조롱박 같았다. 내가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깊은 물속에 별이 나타나듯 내 눈도 그러했다. 낡은 수레가 허물어지듯 내 몸도 그렇게 허물어져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 엉덩이는 낙타 다리 같았고, 손으로 배를 누르면 등뼈가 닿았다. 몸이 이처럼 쇠약해진 것은 다 내가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증일아함경, 23권)"고 전한다.

오늘날로 본다면, 유미죽은 엄마로부터 젖을 땐 아이가 처음 먹게 되는 이유식의 일종이다. 미음(米飮) 또는 이유식을 먹음으로써 아이는 비로소 모체로부터의 분리, 그 일생의 첫걸음도 죽을 먹으며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와는 분명 다르겠지만 부처님에게 유미죽은 고행으로 쇠잔해진 몸을 다시 추스르게 된 첫 음식이다. 보통 단식을 한 후에는 죽부터 먹는 것을 관례처럼 여기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여러 경전에는 '죽을 상용하고 먹었다 바쳤다' 등으로 기록하였는데 그 맛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러면 유미죽은 어떤 맛일까· 경전에 전하는 그 맛은 "비길 데 없이 감미로웠다. 그것을 마시고 나니 그의 몸에서는 새 기운이 솟아났다."로 되어 있다. 흔히 음식물을 먹지 않다가 먹게 되면 허기진 배고픔을 채우는 것이 앞서게 된다. '감미롭거나 기운을 차렸다'는 맛의 느낌은 먹는 직후보다 후일의 감정일 수 있다.

진리를 구현하러 왔으므로 여래(如來),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이므로 세존(世尊) 등으로 부르는 부처가 깨달음을 구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받은 음식이 바로 유미죽이다. 부처는 수자타가 건넨 유미죽을 먹고 깨침을 얻어 45년간 세상에 진리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모든 음식은 약'이라 했듯이 음식의 맛과 멋을 즐기는 것과는 좀 거리가 먼 입장을 가진다. 그의 제자들이 부처님을 '마땅히 공양을 받아야 할 존재(應供)'라 별도의 존칭을 사용하는 것과 같이 음식의 맛보다는 수행의 도구인 몸을 잘 유지하기 위한 약재로서 여러 음식을 취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불교에서 유미죽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자들에게 바치는 음식 즉, 공양음식의 기원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수자타의 죽(粥)'이라 부르는 유미죽은 불교의 시작이자 깨달음의 제1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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