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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09.20 14:34:21
  • 최종수정2017.09.20 14:34:21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음식에는 남녀노소 등 신분차별이 없고 맛과 모양에서도 차이가 없다. 다만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상황, 그리고 음식을 만든 사람의 정성과 재료 등에 따라 그 품격이 달라질 뿐이다.

대장경에서 가장 좋은 음식으로 평가받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제호(醍醐)이다. 일명 '천상의 음식'으로까지 불린다. 제호상미(醍醐上味)의 준말인 제호는 불교에서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좋은 맛"이라 표현하고 최상, 열반, 부처가 될 성품(佛性) 등으로 비유하여 가장 숭고한 깨달음의 경지를 가리키는 의미로 쓰인다.《묘법연화경》과《열반경》두 경전에서는 이를 가리켜 '제호유경(醍醐喩經)'라 이름하여 경전과 같이 성스럽게 여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제호를 본질, 정수를 뜻하는 만다(manda)로 부른다.

<고려대장경>에는 수행과 관련한 내용으로 제호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증일아함경》등법품에는 제호의 정제과정까지 기록하였는데, "마치 우유에서 낙(酪)이 생기고 낙에서 수(酥)가 생기며 다시 수(酥)에서 제호가 생기면 제호가 제일이어서 어느 것도 이를 따르지 못한다"고 비유하여 수행을 잘하는 사람이 제일이고 아무도 그를 따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제호는 우유에서 뽑아 만든 음식인데 그 맛을 제호미(味)라 한다. 우유에서는 나오는 다섯 가지의 맛은 우유(乳), 발효유의 일종인 요거트로 진한 유즙(酪), 살아있는 균을 함유한 버터(生酥), 이를 숙성시킨 치즈(熟酥), 마지막 단계로 얻게 되는 가장 순백한 맛을 제호라 한다. 그 맛은 단맛, 쓴맛 등 다섯 가지 맛에다 담백한 맛을 더해 여섯 가지의 맛(六味)과도 같은 것으로 표현한다.

가장 깨끗한 음식이라는 제호는 그 형태로 보면 차(茶)의 일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제호탕으로 더 알려져 있다. 잘 정제된 우유의 원형인 제호에다 선호하는 여러 재료를 섞어 국물과 같이 만든 탕(湯)으로까지 변모하였다.《삼국유사》에 '낙(駱)'라는 말이 나올 만큼 삼국시대부터 유제품이 있었고, 고려 우왕 때는 목장인 유우소를, 조선에서는 우유를 조달하는 관청인 타락색(駝酪色)을 두었으나 이 기관의 폐단으로 말미암아 세종 때 폐지되었다.

왕이나 일부 귀족층의 보양식이든 우유는 숙종 때부터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왕이 특별히 하사한 타락죽(駝酪粥) 이외에는 먹지 못했다. 타락죽은 정조 19년에 편찬된《원행을묘정리의궤》에 임금의 이른 아침식사인 '자릿조반'으로 자주 올랐던 음식으로 소개하였다. 푸른 매실을 말린 오매(烏梅), 사인(砂仁), 백단(白檀), 초과(草果) 등의 재료를 달여 꿀과 함께 담갔다가 차갑게 만들어 먹던 일종의 청량음료로 변모한 제호탕은 여름철, 겨울에는 수정과를 궁중음료의 백미로 여겼다.《국조보감》에는 정조대왕이 초여름에 "특별히 제호탕을 신하들에게 나눠 먹도록 하여 대신들이 감격했다"고 한다. 효종 때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남용익의《부상일록》에 보면 제호탕을 선물했고, 일본 사신이 조선에서 먹었던 감동을 전하고 있다. 홍석모가 쓴《동국세시기》에는 "해마다 단옷날을 맞아 궁중 내의원에서 제호탕을 만들어 왕께 진상한다"고 했고,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의《산림경제》에 그 제조법이 기록되었지만 원래는 우유의 정제품인 제호로 만든 것이 진짜인데 구도자를 위한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석빙고의 마지막 얼음조각으로 아이스 매실차, 오미차 등으로 만든 제호탕도 여름철에 제격이던 청량음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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