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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9.02 17:01:39
  • 최종수정2019.09.02 17:01:38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금강산 관광에서 '도라지타령'은 늘 빠지지 않는다. 길경타령(桔梗打令)이라는 이 노래는 근세 개화기 이후에 정착된 경기도 신민요인데, 경쾌하며 노랫말의 내용은 청춘남녀의 풋정을 다루고 있다.

 타령만큼이나 남과 북이 함께 해온 민요의 단골 메뉴이자 음식이 도라지다. "50년 묵은 도라지는 금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처럼 산삼보다 더 귀하게 여긴 영물이다. 예로부터 더덕은 남자에게 주고, 도라지는 여자에게 주라고 했다. 더덕은 성질이 차면서도 가벼워 열로 인한 진액 부족 증상을 다스리지만, 도라지는 성질이 평하면서 신경을 소통시키는 작용이 뛰어나 여성들이 신경성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화병이 올라 목이 잘 붓거나 통증이 있을 때 쓰면 효과가 좋다고 한다.

 기원전 1세기경 중국 전한시대에 편찬된 '신농본초경'에는 도라지를 '길경'이라 처음 기록했다. 명나라 때 이시진이 1578년에 저술한 '본초강목'에 "이 약초는 뿌리가 단단하고 곧으므로 '고길경(苦桔梗)'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라고 했다.

 중국 후한시대에 화타의 수제자인 오보가 지은 '오보본초'에는 부호·백약·이여·경초·노여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적었다. 490년경 양나라의 도홍경이 저술한 '명의별록'에는 방도·제니(도라지 잔대)라 기록했다. 원나라 때의 주진형은 '단계심법'에서 고경이라 했다.

 삼국시대부터 식용해온 도라지는 1433년 간행된 '향약집성방'에 도라지를 '길경(桔梗)'이라 처음 기록하고 "햇볕에 말린 것은 인후통을 잘 다스린다"고 했다. 1610년 허준이 편찬한 '동의보감'에서도 길경이라 적고 "성질이 약간 차고, 맛은 맵고 쓰며 약간 독이 있다. 허파·목·코·가슴의 병을 다스리고 벌레의 독을 내린다"고 했다.

 한국, 중국, 일본 등이 원산지인 도라지는 '세종실록지리지'에 보면 조선 초기부터 경기·충청·전라·강원·황해·평안·함길도에서 매달 바치는 공물로, 또한 구황식품으로 중요시됐다. 도라지 자체를 가루 내어 구황식으로 먹기도 했지만, 구황장을 담그는 재료였다. 특히 세종은 1436년 8월, "백성들의 굶주림을 구제하기 위해 '경험진제방'의 처방에 따라 도라지가루 1숟갈, 잡채 1줌, 장과 소금 각각 1숟갈을 타서 달여먹는 방법을 농사를 망친 각도의 백성에게 두루 알리게 했다"고 '세종실록'에 기록했을 정도다. 작황이 좋지 않은 해의 겨울 그리고 이듬해를 대비하기 위해 백성들이 제철에 도라지를 미리미리 가능한 한 많이 캐서 저장해 두도록 꾸준히 권장했다고 여러 '실록'에 전한다.

 구황식 이외에도 도라지를 가루 내어 곡식가루와 섞거나 밥을 지을 때 얹어 쪄 먹는 방법은 1691년경 강와의 '치생요람', 1771년 서명응의 '고사신서' 등에 실려 있다. 도라지 음식은 일상에서 반찬으로도 먹지만, 궁중의 잔칫상이나 다례상에 제수로 올랐고, '길경지각탕'처럼 약재로도 쓰였다.

 한편, 민간에서는 이이가 지은 '전원사시가'에서 "도라지 굵은 것과 삽주순 연한 것을, 낱낱이 캐어내어 국 끓이고 나물 무쳤다"며 산채로 만든 나물·국·쌈의 향기와 맛을 기록했다. 산채는 한국·중국·일본에서 모두 먹지만 국·쌈·볶음·찜 등으로 다양하게 조리해 먹는 것은 우리나라뿐이다. 신분 고하를 가리지 않고 많이 먹었던 도라지는 폭넓은 찬품의 재료인데, 볶아 무친 숙채와 버무린 생채, 된장에 박은 장아찌 등 밥반찬으로 조리하는 것 외에도 1795년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나오는 길경정과를 만들어 먹었다. 이처럼 음식과 약재로 도라지를 애용한 것은 도라지만이 가진 약성에 따른 것이다.

 약재와 각종 찬품에 쓰였던 도라지는 산에서 캔 것이 아니라 재배 도라지가 대세다. 게다가 중국에서 들여온 약품 처리한 도라지들이 우리 식탁을 점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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