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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9.16 17:58:09
  • 최종수정2019.09.16 19:13:50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왕조 시대에는 문무에다 충효, 절개를 오덕(五德)으로 예찬했다. '회심곡'과 같은 노랫말에서도 저승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으로 남자는 충과 효이고, 여자는 절개와 효도였는데, 비록 죄업이 있다고 하더라도 경감해 준다고 했을 정도다.

 이렇듯 충절과 열녀의 절개를 가리키는 것과 다르게 변절을 가리키는 음식의 대명사가 숙주나물(綠豆菜)이다. 여름철에 나물로 무치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쉬어버리고 만다. 이렇게 쉽게 변하는 것이 신의를 저버리고 세조에게 가버린 신숙주와 같다고 하여 숙주나물이라는 유별난 이름이 붙은 음식이다.

 숙주나물과 신숙주와 연관 지은 최초의 한글 기록은 1924년에 출판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다. 이 책에는 "숙주나물을 만두소로 넣을 때, 숙주나물을 짓이기는 게 변절자인 신숙주를 짓이긴다"라고 했다. 숙주나물은 1453년 계유정난 이후 당대의 백성들이 신숙주를 비하하는 의미에서 쓴 데서 유래한 명칭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의미에서 유래했다면 19세기 말부터 풍속 이야기로 만들어진 셈이다. 큰 곤욕을 치른 고령신씨 문중은 멘탈 붕괴는 물론, 제사상에 숙주나물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재상 신숙주의 업적에서 생겨난 말이기도 하다. 1808년에 편찬한 '만기요람'에는 "세조가 좌의정 신숙주에게 녹두(菉豆) 씨앗의 수입을 권장하고, 기근으로 배고파하는 백성들의 식량으로 널리 활용할 수 있도록 힘쓴 신숙주의 업적이 부각될 수도 있다"고 숙주나물의 기원을 기록해 놓았다.

 콩에 물을 주어 키운 것이 콩나물인데, 녹두에서 싹을 틔운 나물은 숙주나물이라 부른다. 이 명칭은 신숙주에 의해서 비롯된 구황작물의 영향일 뿐만 아니라, 숙주란 단어가 생성된 시기도 신숙주의 구제한 공적은 물론, 그가 사망한 1475년 이후에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녹두를 발아시킨 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부르는 곳은 경기도와 충청도, 황해도이지만 경상도와 전라도 등지에서는 녹두나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재배 역사가 3천 년 이상인 녹두는 인도가 원산지인데, 삼국시대에 전해진 것으로 부여의 부소산성 백제 군창지에서 녹두 낱알이 출토되어 청동기시대에 재배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녹두는 안두(安豆)·길두(吉豆)·청소두(靑小豆)·폭사채두(輻射菜豆) 등의 이름으로 적고 불렀다.

 녹두나물은 13세기 말, 중국 원나라 때의 '거가필용'에 녹두에서 싹을 틔운 것이라 하여 '두아채(豆芽菜)'라 처음 기록됐다. 우리나라에서 대중화된 때는 원나라와의 교류가 많았던 고려 말기부터로, 녹두는 13세기 고종 때의 '향약구급방'에 녹두장음(綠豆長音) 또는 장음녹두(長音菉豆)로 적혔다. 1776년에 편찬된 '공선정례'과 19세기의 '만기요람'에서도 녹두장음 또는 장음녹두라고 기록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녹두채로 기록했고, 숙종 때 홍만선의 '산림경제'에는 명나라 문헌을 인용해 두아채라 적었다. 조선 후기까지도 숙주나물 그다음이 팥나물, 콩나물 순으로 나물 선호도가 높았다. 돈만 있으면 무조건 숙주나물을 선택했고 설날과 정월대보름, 추석의 필수 나물이 숙주나물이었다.

 녹두의 전분으로 만든 묵을 청포(淸泡)묵이라고 하며, 청포에 채소·육류를 섞어 식초나 기름에 무친 것을 탕평채라 한다.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1870년 '명물기략'에 처음 기록된 빈대떡(貧者餠)이다. 녹두콩으로 먹을 때보다 80배 정도가 영양가가 많은 녹두나물은 아삭아삭한 식감이 일품이나 잘못 삶으면 비린내가 심하기에 기피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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