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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림전통음식연구원

6세기 초, 중국 양나라 무황제에 의해 생겨난 오신채, 금식문화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염교는 고려 때 구하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달래로 바꿔서 지정됐다. 특히 고려 왕실과 사찰에서는 귀한 음식으로 꼽혔던 작물이다.

한자로 염교 해(薤), 중국식 쪽파로 불린다. 일본말의 랏쿄(辣韮)인 염교는 일본에서 상품개발로 인해 더 알려진 식품이다. 순우리말로 ‘돼지파’라 불리는 염교는 이름만큼이나 낯설지만, 쪽파의 사촌쯤 된다.
그 생김새가 쪽파처럼 가늘고, 잎은 땅에 내려올 만큼 길다. 쪽파보다 알뿌리가 더 통통해서 일명 ‘머리파’라고도 하며, 맛이 진하고 달큼하다. 보통 잎사귀를 자르고 뿌리 알을 먹는데, 모내기 철에 뿌리째 데쳐 돌돌 말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 “상투 틀어서 먹는다”라고 한다.
주로 일식집 등에 나오는 염교는 파 뿌리 절인 것으로 잘못 알거나 절인 마늘과도 비슷하다. 또 시큼하고 떫은맛을 내는 염교는 뿌리 알을 식초에 담근 초지(酢漬)로 이용한다. 중국에는 초지ㆍ당초지ㆍ밀지로 만들어 먹고, 일본과 열대지방에서는 카레용, 우리나라에서는 절임 반찬인 ‘염교절임’이다.
중국 절강성, 히말라야가 원산지인 염교는 채지ㆍ효자라 부르며, 한약재로 해채라고 한다. 중국 주나라 때《이아》에서 “염교는 홍회(鴻薈)이다.” 선진시대 때《산해경》에 약재로 기록됐다. 제나라의 전횡이 지은 ‘만가’에도 <해로(薤露)>라 등장한다. 불교와 도교의 금기음식으로 통하는 염교는《범망경보살계본》과《노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제십》에 오신채의 하나로 적었다. 655년경 당나라 때 이적의《당본초》에는 붉은 것과 흰 것 두 종류를 기록하고, 흰 것은 재배종으로 붉은 것은 야생종에 속한다. 당나라 때 두보의 <가을날 완은거가 염교 서른 단을 보내오다> 시에도, 북송 때 당신미의《증류본초》에서 “비록 맵기는 하지만, 오장에서 매운 냄새가 나지 않아, 고로 도가에서 일상 식용한다”라고 했다.
삼국시대에 전래한 염교는 고려 말, 이첨의《쌍매당협장문집》<마음껏 즐김> 시에서 “밭 가에 염교(薤) 새잎이 돋았다”라고 하여 재배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세종실록》과《중종실록》에는 염교[薤]를 제향과 시묘 등에 사용하지 않는다. 1459년 전순의가 편찬한《산가요록》에는 염교와 함께 동아ㆍ순무ㆍ마늘ㆍ파ㆍ부추 등과 함께 겨울철에 온실을 만들어 채소를 기르는 ‘동절양채법’이 소개되어 겨울에도 싱싱한 채소를 이용한 지혜가 돋보인다.
1527년 최세진의《훈몽자회》에는 ‘염교 구(韮)’라고 적었다. 다른 말로 채지ㆍ해채라 한다. 허준의《동의보감》에서는 ‘해백(薤白)’이라 적고, “염교는 따뜻하게 보하는 성질이 있으니, 수양하는 사람이나 일반인에게 모두 필요하다. 뼈로 들어가니 채지(菜芝)라고 한다. 맛이 맵기는 하나 매운맛이 오장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도가에서 늘 먹는다. 허한 것을 보하는 데 제일 좋다. 국이나 죽을 쑤어 먹거나, 데쳐서 김치를 담근다”라고 했다.
허균의《한정록》과 홍만선의《산림경제》에 염교 재배법을 기록했다. 안동 장씨의《음식디미방》에서는 염교를 파ㆍ생강 등을 향신료로 썼다. 조선 후기 홍여하는 신맛이 나는 탱자 또는 귤과 염교를 가리키는 ‘등해(橙薤)’를 가져오라고 재촉하는 시를 남겼다. 일본에는 매년 6월 6일을 ‘랏쿄의 날’로 지정했을 정도다. 김치를 담글 때 으깨 넣으면 시원한 국물 맛을 내는 염교는 건강상 마늘을 먹고 싶은데, 입안에 남는 냄새 때문에 먹지 못하는 사람은 염교를 즐겨 먹으면 좋다. 이처럼 식품영양학적 상식과 종교적 음식과 차이가 나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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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