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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오늘날에는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야채, 마(薯)는 예로부터 신선들이 먹는 음식이라 했다. 백제 무왕은 어린 시절에 마(薯蕷)를 캐어 팔며 살아 서동이라 불렸다.

중국 양쯔강 남쪽의 회남지방이 원산지인 마는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등지에 자생하는 덩굴의 다년생 식물이다. 기원전 3세기경부터 식용된 마는 기원전 1세기에 편찬된《신농본초경》에 '산에서 나는 좋은 약'이라는 뜻으로 산약(山藥)이라 기록됐다. 중국 동한 때 장중경은《금궤요략》에서 '서여(薯蕷)'로 적었다. 양나라 때 도홍경은《명의별록》에 맛이나 모양이 감자와 비슷하여 서여라고 했다.

옛날부터 강장제로 알려진 마는 중국 당나라 때 진장기의《본초습유》에 "서여자는 잎에 생기는데 큰 것은 달걀 크기 정도이다. 서여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영여자(零餘子)도 그 한 가지이다. 어떤 책에는 큰 것은 달걀만 하고 작은 것은 탄환만 하며 잎의 아래에 생긴다." 이를 명나라 때의 이시진은《본초강목》에서 "영여자는 산약의 덩굴에 맺힌 열매이다. 잘 삶아 껍질을 벗기고 먹으면 산약보다 낫고 우자(토란)보다 맛이 있다. 서리가 내린 다음 수확한다"라고 적었다.

8세기 당나라의 시성 두보는 <진주를 떠나며> 시에 그때 상황을 "서여(참마)로 허기진 배를 가득 채웠으며, 애밀(야생꿀)을 찾기는 어렵지가 않구나"라고 묘사했다. 또 이때, 백성들이 산속에 숨어 있는 동안 뿌리가 굵고 맛이 좋은 약초를 파서 먹으며 견뎠는데, 이 뿌리를 산에서 우연히 만난 약초라는 뜻에서 '산우(山遇)'라고 했으며, 산에서 몸을 보하는 약이라는 의미로 '산약'이라 했다고, 송나라 때 구종석의《본초연의》에 전한다. 이 책에는 "원래 이름인 서여가 당나라와 송나라 때 왕의 이름이라 피휘(避諱)하여 산약으로 적었다." 또 "산약을 약제로 하는 방법은 12월경에 손에 천을 감고, 참대 칼로 껍질을 벗겨낸다"라는 제조방법과 흉년이 들었을 때 기근을 해결하고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야채로 기록했다. 중국 북송 때 왕회은 등이 간행한《성혜방》에는 심장 질환에 싱싱한 산우(山芋)를 사용한다.《본초강목》에서는 송나라 때 구종석의《본초연의》를 인용하여 마의 이름 연유에 대해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3세기 고려승 일연이 편찬한《삼국유사》<무왕>편에서 "백제 무왕이 어린 시절에 마를 캐어 팔며 살아서 서동이라 불렸다"라며 삼국시대 이전부터 식용한 것인데, '서여(薯蕷)'로 처음 기록됐다.《고려사》에도 이를 인용했다.

《고려사》에는 1079년 7월 송나라 황제가 의원과 약재를 보내온 것을 북경 산우(山芋)가 천마(天麻)라고 기록했다. 13세기《향약구급방》에서 산약으로 기록하면서 1420년경《세종실록》<지리지>와《순조실록》에도 산약으로 적었다. 1751년《승정원일기》에도 서여로 기록했으나,《연산군일기》에서는 천마로 기록했다.

조선 중기의 허준은《동의보감》에서 마는 산약 혹은 서여라고 한다. 또 '산속의 토란 같다'라고 하여 산우 또는 속살의 모양을 보고 옥연(玉延)이라 한다. 정약용은《마과회통》을 비롯하여 1930년 5월 잡지《별건곤》에서도 서여로 기록했다.

산약과 산우·옥연 등으로 부르는 마를 '불장서(佛掌薯)'라는 부르는 것은 덩이줄기의 생김새가 "부처의 손바닥을 닮았다"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국내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다란 마(長麻)를 비롯해 짧은 마, 둥근 마가 있다. 중국 저장성의 음식으로 참마·율무쌀·가시연밥 등 8가지를 쌀가루와 섞어 굳혀 만든 팔진고(八珍糕)는 디저트 요리로 유명하다. 참마는 노인과 어린아이에게 좋은 야채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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