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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나물의 터줏대감 '곤드레나물'

대장경 속의 음식이야기

  • 웹출고시간2020.03.16 16:50:06
  • 최종수정2020.03.16 16:50:06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정월과 이월 보름 사이에 먹는 곤드레나물 밥이 으뜸이다. 곤드레나물은 겨우내 저장해둔 묵은 나물의 터줏대감이지만, 4~6월에 생나물로 먹는 것도 아주 좋다. 이후에는 삶아서 건조한 곤드레나물을 먹거나 보기 때문에 묵나물로 인식하게 된 까닭이다.

곤드레의 공식 명칭은 '고려엉겅퀴'이다. 다소 생뚱맞은 풀 이름은 일제 조선총독부가 1922년 발행한《조선식물명휘》에서 엉겅퀴에다 고려를 앞에 붙인 학명으로 처음 기록했다. 곤드레 꽃이 엉겅퀴꽃과 비슷하게 피는 모양을 보고, 일본인 모리 다메즈가 고려엉겅퀴로 식물 이름을 지은 것이다.

곤드레란 이름은 계곡, 산어귀 곳곳에 제멋대로 자라는 고려엉겅퀴가 바람이 불면 줄기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술 취한 사람과 비슷하다고 하여 불러진 이름이다. "곤드레만드레 나는 취해버렸어"라는 유행 가사가 2006년에 등장하면서 술에 취한 모양새를 나타내는 말로 널리 알려졌다. 뜻으로는 얼 축 맞는 말이지만 곤드레는 식물인 '곤들레'의 강원도 방언이다. 만드레는 '만도리'의 전라남도 방언으로 벼 심은 논에서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일하는 김매기 모습을 말한다.

이 절묘한 말의 조합은 정태모 시인이 1992년 12월, 월간 잡지에 처음 쓴 시로 "곤드레만드레 우거진 골로, 우리네 삼동네 보나물 가세"라는 시 구절과 구전민요《정선아리리》에 등장하는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님의 맛만 같다면, 올 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지"라는 구절이 함께 뒤섞여 사용되면서 '곤드레만드레'가 상징처럼 불리게 됐다. 또 곤드레로 만든 죽을 '딱죽'이라 하는데, 노랫말로 할 때 곤드레 딱주기로 불러서 표현된 말이다.

아무튼, 곤드레는 엉겅퀴의 일종이다. "피를 멈추고 엉기게 하는 풀"이라 하여 이름이 붙여진 엉겅퀴는 중국 동진 때의 범왕이 지은《범왕방》에 말굽처럼 딱딱한 가시 풀이라고 마계(馬薊)라 처음 기록했는데, 지금의 바늘엉겅퀴이다. 양나라 때의 도홍경은《신농본초경집주》에서 그 모양이 호랑이와 고양이를 닮았다고 하여 호계와 묘계 그리고 가시가 아주 크다고 대계(大薊)라 적었는데, 엉겅퀴를 가리키는 공식 한자이다. 16세기 명나라 때 이시진은《본초강목》에서 들판에 핀 붉은 꽃이라고 야홍화라고 기록했다.

잎끝의 가시가 주요특징인 엉겅퀴는 세종 때인 1431년에 간행된《향약채취월령》에는 대계라 적고, 이두식으로 '대거색(大居塞)'이라 했다. 1489년에 편찬된 한글 의학서《구급간이방》에는 가시가 크다고 '한거새'로 적었다. 허준의《동의보감》에는 대계 그리고 우리말로 '항가새'라고 적고, "한 가시 즉, 가시가 크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꽃을 항가새꽃"이라고 했다. 해방 이후 청마 유치환은 항가새꽃의 시인으로 불렸는데, 그 꽃은 엉겅퀴꽃이다. 1690년 조선사역원에서 간행한《역어유해》에서 '엉것귀'로 처음 기록했다가 1824년 유희가 편찬한《물명고》에서 '엉겅퀴'로 바뀐 다음, 지금까지 그대로 쓰고 있다.

중국 청나라의 왕불은《의림찬요》에서 북을 치는 망치 같다고 '고추'라 하는 등 식물의 모양으로 그 이름을 기록했으나, 우리 조상들은 17세기부터 낫, 망치 등에 베인 상처에 항가새 생즙을 바르면 피가 잘 멈추는 것을 보고, 피를 엉기게 하는 귀신이란 뜻으로 '엉것귀'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 명칭은 구한말부터 발음하기 쉬운 엉겅퀴로 잘 쓰고 있는데, 20세기 초 일본의 학자들이 전혀 다른 이름을 붙여 놓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상관없이 세계에서 가장 쉬운 한글로 곤드레라 부르며, 맛있는 곤드레나물 밥을 식탁에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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