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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남인도가 원산지인 동아호박(White gourd) 또는 동과(冬瓜)는 오늘날에 잊혀진 채소이지만, 조선 초기부터 널리 재배하고 이용한 채소이다. 동화·압과·한과 등으로 불린 동아는 박과 식물의 열매이다. 박보다도 더 크고 길쭉하다. 대개 길이가 지름의 2배는 넘으며, 큰 것은 길이가 1m를 넘는다.

겨울 수박으로 불리는 동아는 "하얀 눈 속의 겨울 아이를 닮았다"라고 하여 동아(冬兒)라고 불린다. 동아는 저장성이 좋아서 "통째로 저장하면 겨울까지 먹을 수 있다"라고 동과란 이름을 얻었다. 기다란 원형으로 베개 모양이기에 침과라고 부른다. 하얀 호박이란 이름은 열매가 익을 때쯤, 그 표면에 서리와 같은 하얀 분(粉)이 덮이기 때문이다. 서리를 맞으면서 겉에 흰 분이 생겨나고, 씨도 하얀색이기에 백과라고 한다. 4~6월 호박꽃 같은 노란 꽃이 피고, 어린 열매는 호박과 같이 녹색이지만 하얀 털북숭이의 모습이다. 결실과 제철 시기는 7~8월이다.

95% 이상이 수분인 동아는 몸을 차게 하고, 붓기를 해소하는 등 여름 채소의 특성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여름철의 갈증 해소와 입맛을 돋우기 위해 많이 먹던 채소였다. 단단한 껍질 속에 하얗고 부드러운 속살이 수분을 가득 머금고 있어 어떤 요리에도 활용할 수 있다. 오이처럼 영양가가 낮은 재료로 여겨진 때도 있었지만, 칼륨의 함량이 높고 저칼로리와 이뇨작용으로 나른함과 부종, 변비를 해소하는 효과도 있다.

3세기 이전에 중국으로 전래한 동아는 중국 진한시대에 편찬된《신농본초경》에 '수지(水芝)'라 처음 기록하고, 위나라 때 장읍의《광아》에는 '지지(地芝)'로 수록했다. 6세기 초, 도홍경은《명의별록》에서 차가운 오이라 하여 한과로 적었다. 당나라 때 맹선은《식료본초》에서 동과라 처음 기록했으며, '살 빼는 채소'로 여겨졌다. 송나라의 소송 등이 편찬한《도경본초》에는 농장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재배한다고 했다. 원나라의 왕여무는《산거사요》에는 "서화가 증습되어 변색하고, 젖은 것은 동과를 사용하여 씻을 수 있고, 의복이 누렇게 변색한 것은 동과로 씻어 때를 뺄 수 있다"라고 했다.

고려 중기에 전래한 동아는 이색의《목은시고》시에서 "큼지막한 동과는 얼려서 얼음을 만들고"라면서, 동아를 저잣거리의 대중적 음식으로 적었다. 조선 초기에 동과는《세종실록》에서 종묘 천신제의 제물로 사용하였으며, 6월의 식자재로 적었다. 1431년 간행한《향약채취월령》과 성현의《용재총화》에도 "동과 씨를 심어 많은 이익을 얻었다"라는 일화가 전할 만큼 대중적인 음식이었다. 조선의 명장 이순신의《난중일기》에는 동과를 준비해 병사들의 갈증을 해소케 했다고 기록했다.

1610년《동의보감》에서 동과는 처음에 청록색이고, 서리가 온 뒤에는 껍질이 분을 칠한 것처럼 하얗게 돼 백동과라 했다. 1611년 허균의《도문대작》에는 충북 "충주에서 나는 동과(冬瓜)가 제일 좋다"라고 하여 동아의 명산지를 소개했다.

17세기 말의《음식디미방)과《주방문》,《산림경제》등에는 동아선·동아누르미·동아전·동아돈채·동아섞박지·동아정과·동아주 등 조리법이 나오는 것과 같이 대중적인 채소였다. 지금은 흔한 것은 아니지만, 1940~50년대까지 많은 사람이 집 앞에 호박처럼 재배해서 먹었다. 동아 맛은 수박의 하얀 부분과 무의 중간 맛인데, 박 맛과 거의 비슷하다. 무나 박처럼 국물 요리에 넣어 시원한 맛을 내지만, 그리 인기 있는 식재료는 아니었다. 현재도 먹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전남 순창 등 일부에서 재배하는 잊혀 가는 채소임에도 앞으로 발굴 가치가 높은 채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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