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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께 바친 음식 '오이'

대장경 속의 음식이야기

  • 웹출고시간2018.06.25 17:49:45
  • 최종수정2018.06.25 18:07:33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세기의 담판으로 열린 지난 6월 12일 싱가폴 '북미정상회담'의 점심 메뉴로 오이가 나왔다. 오이에 낸 칼집 틈에 소고기, 달걀, 당근 등을 채우고 새콤한 식초 물을 끼얹은 오이선 요리였다. 토마토와 마찬가지로 오이는 풀에서 열리는 열매인 채소이다.

오이(瓜)는 인도 서북부가 원산지로 인류 최초의 절임 음식이다. 기원전 공자가 편찬한 '시경'에 처음 나온다. "밭두둑에 오이가 열렸다. 껍질을 벗기고 절여 조상님께 바치자(疆埸有瓜 是剝是菹 獻之皇祖)" 해 제례음식으로 기록됐다. 오이를 소금이나 식초에 절인 것으로 보아 오이지를 가리킨다. 후한 때 편찬된 '설문해자'에는 절인 채소를 식초에 절인 것이라 풀이했다. '시경'에 나오는 오이지는 소금에 절인 것이라기보다도 식초에 절인 서양식 장아찌인 오이피클(pickle)이나 식초를 타서 겉절이로 먹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시경'에 기록된 것과 다르게 오이는 300년이 지나서 한나라 때 "장건의 실크로드 개척으로 서역에서 전래되었다"고 명나라 때의 이시진이 '본초강목'에 기록했다. 남북조시대인 424년에 번역된 '불설무량수불경' 등에는 "석가여래는 삼월에 일찍 빔바(bimba) 과일을 먹고, 사월이면 생오이(生瓜)를 먹는다."고 했다.

오이는 속담에도 많이 등장하는데 관료들의 벼슬 임기와도 연관이 아주 깊다.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과 얽힌 이야기로 "이듬해 오이가 익을 때 후임자를 보내겠다."는 약속이다. 수박보다 오이가 늦게 익는 점을 악용한 것으로 원나라의 증선지가 지은 '고금역대십팔사략'에 나오는 과숙지약(瓜熟之約)이란 고사성어다.

중국 진나라 말기에 동릉후란 제후의 자리에 올랐던 소평이 나라가 망하자 궁성 밖에서 오이를 심어 먹고 살았다. 이때부터 동릉과, 고후과로 불리는 오이는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 기록돼 청렴한 삶의 상징으로 회자됐다. 또 양나라 소명태자의 시문집 '문선'에 보면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않고, 자두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매지 않는다."는 '군자행(君子行)'의 시가 있다. 위나라 조조의 아들 조식의 시로도 전하고, 전한시대의 편찬된 '열려전'의 일화로도 전해진다. 당나라의 시인 왕유는 "길가에서 때때로 동릉후 오이를 팔고, 문 앞에는 도연명의 버드나무 심기를 배우네."라고 노래했다. 이처럼 정치와 문학에 인용될 만큼 널리 알려진 오이는 기원전 600년대부터 이미 식용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 전래된 오이는 고려 건국과도 연관돼 있다. '고려사절요'에는 개국혁명을 모의할 적에 왕건의 부인에게 이르기를 "동산에 새 오이가 열렸을 테니 그것을 따오라"는 기록과 왕건 책사이던 최응이 "정원의 오이에서 나왔다(園瓜生)"고 조선말기의 이유원이 쓴 '임하필기'에 전한다. 고려 의종 때의 내시낭중 정서는 부산 동래에서 귀양살이할 적에 오이를 기르는 정자를 짓고 '정과정곡'이란 노랫말을 지었다. 송나라의 사신 서긍은 '고려도경'에 고려청자를 "술그릇의 형상이 마치 오이 같다"고 묘사했다. 고려 충렬왕 때의 추적이 지은 '명심보감'에도 '오잇밭과 자두나무 밑에서(瓜田李下)'라는 고사를 인용했다.

김매기를 마친 여름철 풍습으로 백중 행사의 하나인 '호미씻이' 놀이를 본 조선 중기의 장유는 '계곡집'에서 "삶은 박에 오이 썰어 새우도 듬뿍 올려놓고 낡은 뚝배기엔 기장 빚은 막걸리가 찰랑찰랑"이라 표현했다. 정약용은 "찻물과 오이 비록 조촐하지만 머물러 있노라니 정성 알겠네.", "아서라 차 솥에는 불 때지 말고 오이 그릇에 번갈아 얼음을 넣자"고 했다. 추사 김정희는 좋은 반찬이란 "두부나 오이와 생강과 나물(大烹豆腐瓜董菜)"이라고 썼다. 반찬 등으로 먹은 지 무려 3천 년이 넘는 오이는 냉국과 오이지, 오이김치 등으로 여름철 입맛 없을 때 좋은 먹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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