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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두

시인·괴산문인협회장

당신은 실연당한 남자가 되어 홀로 쓰디쓴 술을 마시며 조지훈 님의 시 「사모」처럼 이런 건배를 해 본 적이 있을까요.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나는 이 멋있는 건배사에 매료되어 「사모」란 시를 좋아하게 되었고 외워 때때로 낭송하곤 한다. 시 「사모」는 조선 선비정신이 오롯했던 조지훈 시인이 생전에 발표한 시집에는 없었는데, 48세로 단명한 후 사후 육필 원고집에서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진 시다.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죽도록 사랑했으나 '정작 할 말이 남아있음을 알았을 때' 즉 아직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못하였는데 상대는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있었'음을 알게 되었다면 당신은 어찌할까요.

시 「사모」의 여운이 호수의 파문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을 때 조지훈 님의 출생지를 보고 싶은 생각이 스쳐 선뜻 영양으로 기행을 떠났다. 영양은 경북 북쪽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은 오지다. 이런 산골에 조지훈 생가가 있는 주실마을 같은 버젓한 양반골이 있다는 것이 여행의 궁금증을 추가한 것이다.

사월 봄날 화창한 날

이미 매화 벚꽃은 진지 오래

하얀 사과꽃 흐드러진 구불구불한 국도를

산천경개 구경가듯 나도 구불구불 간다

연둣빛 애기 손 같은 이파리들

모두 모두 나와 손을 흔들어 주고

산소 같은 싱그러운 아침 기운이여

삶이 배설한 온갖 찌꺼기로 너덜너덜해진

가슴이, 민들레 꽃씨 되어 솜털처럼 날았다

영양읍 지나 들린 주실마을은 나지막한 산자락이 앞뒤로 길게 늘어선 사이를 작은 냇가가 지나가고 마을 전체가 한옥으로 집집이 널찍한 마당과 고샅 돌담길이 자유로운 경계를 가져 여유로운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으로 멀리 앞산을 바라보며 뒷산 아래 조금 높은 터에 점잖게 자리하는 품새라니, 어찌 이런 좋은 터를 잡았을까 감탄이 절로 났다.

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은 마을 중심부에 ㅁ자형의 본채와 대문이 있는 행랑채 등이 있어 명문가의 위엄과 멋을 보여준다. 본채 뒷 좌편에 지훈 시인이 어릴 때 자란 별채가 있는데 대문에 '방우산장(放牛山莊)'이라고 새긴 현판이 걸려 있다. 이 이름은 서울 성북동에 살았던 지훈 시인이 붙인 이름으로 '마음속에 소 한 마리를 키우면 직접 소를 키우지 않아도 소를 키우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소 한 마리를 키우는 마음」은 아마 「농부의 마음」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지훈 시인은 그의 글 「방우산장기」에서 '내가 그 안에 잠자고 일하며 먹고 생각하는 터전은 다 방우산장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라고 한 것을 보면 특별한 의미보다는 자기 집에 자기 마음에 드는 집 이름을 붙이는 일과 별반 다른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귀로에 영양 읍내에 들러 보았다. 전국 인구밀도가 최저인 영양은 실제 사람들이 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거리는 한산했지만 너무 소박하고 어떤 정겨움이 곳곳에 배어있음이 느껴져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선비의 멋과 향취가 살아있는 조선시대에 온 듯했다. 조지훈 시인이 영양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이 우연이 아닐 듯이 나의 이번 영양기행도 어떤 인연이 생겨서인 듯하여 자축하는 의미로 건배를 든다.

한 잔은 우리의 멋이 살아있는 영양을 위하여, 또 한잔은 지조 있던 지훈 시인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지훈 시인을 흠모하는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이런 인연이 생겨났음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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