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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두

시인·괴산문인협회장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내리고 바람은 제법 서늘하다. 매미소리 사라지고 귀뚜라미 소리 들린다. 엊그제 처서를 지났다. 처서만큼 계절의 변화에 관련된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절기도 드물다.

처서(處暑)라는 한자의 의미를 어떤 이는 '여름을 처분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처(處) 자의 '머무르다'는 의미로 보아 '여름이 머물러서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처(處)의 의미는 무려 27가지나 있다. 이 중에서 제 1의로 곳과 때를 의미하지만 처분한다는 의미는 안 보이고, 멈추다(止)는 의미가 있어 이를 빌어 처서를 '여름이 멈춘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입춘(立春), 입하(立夏), 입동(立冬) 등이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것과 같이 입추(立秋)는 가을의 시작을 알리지만 진짜 가을의 시작은 처서를 지나면서 부터다. 입추 지나 처서까지는 아직 햇볕이 너무 강하고 더구나 지구온난화로 대기온도가 올라 여름처럼 덥고 때로는 올해 '카눈' 같은 태풍이 오기도 해서 가을이 시작됐다고 하기는 이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서가 지나야 서서히 가을의 맛이 난다. 벌써 그 커다란 오동잎은 누렇게 변해 하나둘씩 떨어지고 그렇게 윤이 나던 짙푸른 잎들도 서정주님의 '초록이 지쳐 단풍 들' 듯이 잎이 마르고 색깔이 변하게 된다.

이때쯤 되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고 한다. 6, 7월 습하고 후덥진 날씨에 기세등등하여 피를 빨아먹던 모기도 한결 약해진 햇볕과 건조해진 날씨에 기가 꺾이고 힘이 달려 제대로 자기 침을 찌르기 어렵게 된다는 뜻이라 생각된다.

처서와 관련해서 남도지방에 전해지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처서에 창을 든 모기와 톱을 든 귀뚜라미가 길에서 만났다. 모기의 입이 귀 밑까지 찢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귀뚜라미가 그 사연을 물었다. 이에 모기는 "사람들이 나를 잡는답시고 제 허벅지와 볼때기를 치는 걸 보고 너무 우스워서 입이 이렇게 찢어 졌다네"라고 대답하고는 귀뚜라미에게 "자네는 뭐에 쓰려고 톱을 가져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귀뚜라미는 "긴긴 가을밤 독수공방에서 임 기다리는 처자, 낭군의 애간장을 끊으려 가져가네'라고 말했다 한다.

처서는 농사와도 관련이 깊다. "처서에 장벼 패듯한다"는 말이 있다. 장벼는 이삭이 팰 정도로 다 자란 벼로 처서 무렵에 벼가 얼마나 쑥쑥 익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 때 오는 비는 달갑지 않다. 처서에 오는 비를 처서비라 하고 "처서비 십리에 천 석 감한다"하거나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쌀이 줄어든다"고 했다. 그만큼 처서 무렵의 날씨는 한 해 농사의 풍흉을 결정짓는데 중요하였음을 말해준다.

처서에는 벌초를 했다. 여름내 그렇게 뜨거운 햇볕과 장마비에 쑥쑥 자라던 풀들이 처서가 지나면 햇볕이 누그러지고 건조해져 풀이 더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 밭두렁의 풀을 베어내고 산소에 벌초를 했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처서를 맞아 절기에 대한 선조들의 이야기를 꺼내 보니 예전 우리 조상님들이 가진 해학과 여유, 그리고 지혜가 가을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스며드는 것 같다.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고 말하는 우리는 그런 멋진 조상님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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