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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의 '부활'

보조금 편취 혐의 등 '비리온상' 곤욕, 대법원 판결로 상처분인 '명예 회복'

  • 웹출고시간2008.01.03 23:55:3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가난하고 오갈데 없는 사회의 버림받은이들의 휴식과 안식처인 음성 꽃동네 정경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의지할데 없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음성꽃동네.

2008년 새해에도 어김없이 꽃동네의 아침은 시끌벅적 사람사는 냄새가 가득한채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기자가 찾은 지난 2일 오전 꽃동네의 아침은 거동불편자를 부축해 세수를 시켜주는 자원 봉사자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같은 처지이지만 더 불편한 동료들을 위해 밥을 퍼날라다 주는 시설 수용자, 혼자 힘으로 일어나기조차 힘든 몸이지만 반듯하게 일어나 아침밥이 나오길 기다리는 사람 등, 모두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배어 진채 새희망과 꿈을 기득 싣고 뜨겁게 떠오르는 새해 첫 해를 보며 각자의 소망과 소원을 마음속 깊이 비는 모습이 역력하다.

꽃동네는 사랑의 결핍 때문에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길가에서 다리 밑에서 아무 말 없이 죽어가는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힘조차 없는 사람들을 따뜻이 맞아, 먹여주고 입혀주고 치료해주며, 이곳 시설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에게 사후 안식처까지 제공하는 사랑과 구원의 공동체다.

음성 꽃동네의 2008년 새해 아침은 그 여느해보다 뜻 깊은 의미 속에 출발을 하게 됐다.

어렵고 힘든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해 주는 오웅진 신부

이곳에서 이땅의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30년을 헌신해온 오웅진신부가 수년간 온갖 법정시비에 휘말리면서, 고난의 세월을 걸어오다 지난 해 말 결국 오 신부에 대한 상고심에서 대법원 3부(주심 김황식 대법관)는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구랍 27일 동생과 자형이 농지와 임야를 구입하는 데 꽃동네 자금 7억6천만원을 지출하고, 사회복지시설에 근무하지 않는 사람들이 근무하는 것처럼 속여 음성군으로부터 5억원의 보조금을 받아내는 한편 모 광산 개발과 관련해 업무를 방해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일부 유죄, 2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은 오웅진 신부에게 전격적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고보조금 지급기간에 다양한 형태의 사회복지시설이 통합적으로 운영되면서 24시간 숙식제공과 치료· 재활지원을 받는 생활시설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꽃동네의 특수성을 참작하면 부정한 방법으로 국고보조금을 빼돌리려는 의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 고 밝힌 것이다.

이로써 오웅진 신부에 대한 치욕에 가까운 멍에가 홀가분하게 벗겨지는 순간이다.

그동안 꽃동네는 뜻하지 않게 연루돼 각종 의혹을 받아온 오 신부 비리 사건에 대해 각종 여론과 언론 등의 횡포에 무참히 망가지는 치욕을 맡보았다.

특히 처음 오 신부가 법정에 서면서 각종 언론은 앞다퉈 마치 무슨 특종을 건지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꽃동네를 도마위에 올려 놓은채 뒤 흔들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사건이 무혐의가 되자 당시의 언론들은 사회면 한 쪽 귀퉁이에 오 신부 무혐의에 대해 짧게 보도했다.

지난 2006년 정진석 추기경과 함께한 오웅진 신부(왼쪽)

당시 이 같은 언론 행태와 부정적인 사회적 시각으로 인해 꽃동네는 전국 100만명의 후원자들로부터 걷어들이는 후원금이 30%정도 줄고, 상대적으로 자원봉사자들도 줄어드는 등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됐으며, 꽃동네 관계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시키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꽃동네 관게자들은 이 같은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오 신부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맡은바 봉사활동에 전념하면서 결과를 기다려 왔다.

지금에서 볼때 오 신부는 양심적인 이시대의 신실한 신부로 평가된다.

특히 혼자 생활하는 신부가 무슨 욕심이 있어 거액의 후원금과 국가보조금을 편취했겠는가 자문해볼 필요성이 있다.

오 신부 혐의에 대한 법리적 해석을 넘어 상식적으로 보았을때도 편취 의혹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다. 신부가 부정한 방법으로 국고 보조금을 빼돌렸다면 이 사회는 그야말로 암흑과도 같은 세상이 될 것이다. 뒤늦게나마 대법원이 오 신부의 명예를 회복해 주었고 '정의는 반드시 살아있다'는 정설을 일깨워 주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오 신부와 꽃동네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한 점의 의혹 없이 모든 사람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게 됐다?며. 일제히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이번을 계기로 꽃동네가 사회에서 버림 받고 오갈데 없는 불우계층에 대한 따뜻한 마지막 안식처가 될 수 있는 사회 시설로 다시 태어나 건강한 복지사업을 꾸준히 펼쳐 나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꽃동네는 1976년 5월 3일 청주교구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오웅진 신부가 그해 8월 20일 금왕성당에 부임한 후 40여 년 동안 남는 밥을 얻어다가 동냥도 못하는 걸인들을 먹여살리고 있던 최귀동(세례명 베드로)노인을 만남으로 시작 됐다.

이때 가난한 사람들을 내 몸같이 사랑했던 오 신부는 당시 전재산이었던 주머니돈 1천300원으로 직접 벽돌을 찍어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과 집을 짓기 시작해 지난 1976년 11월 걸인 18명을 입주시키면서 꽃동네를 태동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후 1981년 현부지에 자리를 마련하고 공사를 시작 1983년 9월 꿈에 그리던 부랑인 시설을 준공하게 됐고 정신요양원(85년), 결핵요양원(86년), 노인요양원(87년), 인곡자애병원(88년)등을 잇달아 설립해 가난하고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달래왔으며, 현재는 4천여명의 수용자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또 현재까지 1만여명이 이 시설을 거쳐갔으며, 약 4천여명은 이미 사랑의 치유를 받아 사회로 복귀했다.

이처럼 꽃동네가 30년을 걸어오면서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에 큰 획을 긋고 있으며, 현재도 매년 80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종교를 초월한 사랑의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꽃동네를 후원하는 전국의 100만명의 후원자들 중 비신자와 타종교인들의 수가 많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종교는 몰라도 꽃동네를 안다'고 할 정도로 꽃동네는 이미 우리나라 대표적 사회복지시설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즉 꽃동네가 하나의 사회복지 시설에서 이를 초월한 사랑의 요람 자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꽃동네는 지난 1997 년 사회복지전문인재 양성을 위해 학교법인 꽃동네 현도학원을 설립하고 1998년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를 설립, 1999년 3월 개교와 동시에 첫 입학식을 가졌다.

2000 년 1월 창설자 오웅진 신부가 예수의꽃동네형제회에 입회하였고, 같은 해 2월 이동호 전 내무부장관이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제2대총장으로 취임했고, 유성종씨가 3대 총장에 취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밖에 2001 년 3월 꽃동네 천사의집 정신지체장애아동들의 특수교육을 위한 꽃동네학교를 개교하는 등 사회복지와 불우계층에 대한 학업정진의 장을 마련했으며, 지난해 사랑의 연구소를 개원, 꽃동네의 탄탄한 자원을 바탕으로 인적, 물적 봉사를 더욱 체계화 시켜 나갈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오 신부가 지난 1976년 18명의 부랑인과 함께 생활하며 시작된 꽃동네는 심신장애요양원과 정신요양원, 아동시설, 입양기관 등의 시설을 체계적으로 갖춰오며 현재 국내 최대 종합사회복지시설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 시설에 때 아닌 법정시비라는 걸림돌로 인해 전국적인 이목이 집중되는 등 커다란 시련이 닥쳐 왔지만 꽃동네 전 가족이 슬기롭게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지혜를 유감 없이 발휘해 새로운 이미지의 꽃동네로 부활을 시작하고 있다.

꽃동네는 이제 각종 의혹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만큼 정상적인 경영이 이뤄지고 또 후원자와 후원금, 자원봉사자의 행렬이 예전처럼 활기차게 회복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곳 시설은 말 그대로 사랑의 결핍 때문에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을 맞아들여 따뜻이 보살피는 사회복지시설이다. 부디 아픈 상처를 딛고 일어나 더욱 번창하는 새로운 전환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음성 / 조항원기자

꽃동네는...

꽃동네는 1976년 5월 3일 청주교구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오웅진 신부가 그해 8월 20일 금왕성당에 부임한 후 40여 년 동안 남는 밥을 얻어다가 동냥도 못하는 걸인들을 먹여살리고 있던 최귀동(세례명 베드로)노인을 만남으로 시작 됐다.

이때 가난한 사람들을 내 몸같이 사랑했던 오 신부는 당시 전재산이었던 주머니돈 1천300원으로 직접 벽돌을 찍어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과 집을 짓기 시작해 지난 1976년 11월 걸인 18명을 입주시키면서 꽃동네를 태동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후 1981년 현부지에 자리를 마련하고 공사를 시작 1983년 9월 꿈에 그리던 부랑인 시설을 준공하게 됐고 정신요양원(85년), 결핵요양원(86년), 노인요양원(87년), 인곡자애병원(88년)등을 잇달아 설립해 가난하고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달래왔으며, 현재는 4천여명의 수용자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또 현재까지 1만여명이 이 시설을 거쳐갔으며, 약 4천여명은 이미 사랑의 치유를 받아 사회로 복귀했다.

이처럼 꽃동네가 30년을 걸어오면서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에 큰 획을 긋고 있으며, 현재도 매년 80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종교를 초월한 사랑의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꽃동네를 후원하는 전국의 100만명의 후원자들 중 비신자와 타종교인들의 수가 많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종교는 몰라도 꽃동네를 안다’고 할 정도로 꽃동네는 이미 우리나라 대표적 사회복지시설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즉 꽃동네가 하나의 사회복지 시설에서 이를 초월한 사랑의 요람 자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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