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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어쩌면 그렇게 짙은 와인 빛일까. 잘 마른 곶감을 상자에 넣는데 엉기는 진액이 꿀처럼 달다. 며칠 전 동생네 집에 다녀왔다. 무심코 보니 처마 끝에 곶감이 매달려 있다. 날개방 처마의 고드름은 바람에 깨지고 떨어졌으나 곶감은 무사했다.

제아무리 맛난 과일도 무드러기가 있다. 하지만 곶감 치고 맛없는 것은 드물 것이다. 나 자신 무척 좋아하지만 동생이 말린 곶감은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똑같은 감이라도 어떻게 말리느냐의 문제였다.

동생네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였다. 뒤뜰의 동백나무도 10년을 깔축없이 살고 있다. 감나무는 몰라도 동백나무 겨울나기는 남부지방에서만 가능하다. 곶감이 걸려있던 뜰은 유난히 바람모지였으나 산자락이 채 덮어주면서 추위를 막아준 셈이다.

바람의 회초리에 알몸뚱이가 쩍쩍 갈라진다. 아물만하면 삭풍에 연달아 갈라진다. 그러고 나서도 반시밖에 되지 못했다. 보통 가을에 말리는데 한겨울이라서 특별한 맛을 창출한 셈이다. 식혜니 수정과도 차가울 때가 달다. 몇 십 년만의 추위도 맛을 부추겼다.

속이 언짢은 날은 곶감을 약처럼 먹는다. 곶감의 타닌산이 위산을 중화시킨다니 이따금씩 먹어도 속병이 낫는다. 홍시를 먹기도 하는데 더부룩한 속이 개운해진다. 곶감이든 홍시든 찬바람 속에서 숙성된 때문이었을까.

옛날 어떤 아들이 노모를 간병하고 있었다. 약을 써도 소용이 없고 맛난 음식을 드리면서 효도를 대신하는 판이었다. 자리보전한 지 5년 째 되는 어느 날 노모는 뜬금없이 홍시를 찾았다. 한여름이었으나 아들은 집을 나섰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찾던 중 홍시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어렵게 구해서 드렸더니 씻은 듯 나았다.

처방도 아닌 처방이 주효했다. 골골하던 노모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으니 동네방네 소문이 파다했겠지? 삼복더위에 곶감도 아니고 홍시가 믿기지는 않으나 최근 강원도 정선과 함백에서 얼음골이 밝혀진 바 있다. 남부지방이 아니어도 겨울에 무사한 동생네 동백나무를 보면 한여름에 얼음 골짜기도 있을 법하다.

시례빙곡에 다녀왔다. 땅에서 솟아오른 초대형 고드름이 영남의 알프스라는 게 괜한 말은 아니다. 가지산(1천240m) 중턱에 들어서자마자 등줄기가 써늘해 온다. 뜻밖이었다. 복더위에 고드름이 주렁주렁한 골짜기를 보게 될 줄은.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다. 사실이라면 밀양의 시례빙곡까지는 아니어도 누군가 비슷한 곳에 저장해 둔 홍시를 먹고 병을 고쳤으리. 노모가 이후 얼마나 더 살았는지 몰라도 그렇게 회생한 거라면 특별한 공간이다.

한여름에도 썰렁한 골짜기는 거꾸로 가는 세상 그대로였다. 얼음골과 한증막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중복이면 얼음은 최고 두꺼워지고 겨울이면 녹는다. 그리고는 바위틈에서 따스한 공기가 새어나온다. 제 철이 아닌 절기와 동떨어진 음식도 필요한가 보다.

임산부가 엉뚱한 과일을 찾으면서 입덧을 가라앉히듯 눈보라에 단련된 홍시가 노모의 병을 낫게 했으니. 난데없이 딸기를 찾질 않나 잉어를 탐하는 경우도 있다. 홍시는 여름에도 써늘한 시례빙곡 같은 데서 구했지만 겨울에는 반대로 훈훈할 테니 잉어를 낚고 딸기를 구할 수도 있었을 거다.

한여름 홍시에서는 거꾸로 가는 절기를, 빛깔부터 다른 한겨울 곶감에서는 설상가상 날들에서 크는 연륜을 생각한다. 지금이야 냉동고에 보관했다가 봄이고 여름이고 먹을 수 있지만 냉장고도 없던 그 시절 이야기가 자못 감동적이다.

덜 익은 감도 끝내는 단맛으로 바뀌듯 고난도 행복으로 바뀌면서 아름다운 인격의 초석이 된다. 타닌산이 홍시와 곶감이 들쓰고 있는 허물이듯 고난은 행복이 쓰고 있는 가면이었다. 떫은맛과 단 맛의 경계도 한 끗 차이라면 행복과 불행도 종잇장 차이라 하겠다. 곶감이든 홍시든 눈보라 속에서 숙성되듯 목표도 드난살이 속에서 영근다. 인생노트에 적고 보니 소망의 벽돌장을 쌓아올린 것처럼 든든하다. 고민하면서 길을 찾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인간의 전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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