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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2.05 16:00:14
  • 최종수정2023.02.05 16:44:07

이정희

수필가

엊그제 인근의 식당에서 모임이 있었다. 갈비탕과 해장국 등 다양한 메뉴 중에서 특별히 '추억의 비비고'라는 북스에 자리 잡았다. 양은도시락과 김치와 고사리와 콩나물을 곁들여 놓았다. 추억 속의 장면처럼 김치를 깔고 나물을 넣어 렌지에 올려놓았다. 참기름을 치고 잘게 부순 김과 달걀까지 고명으로 얹어 먹는 맛이 제법 괜찮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겨울이었다. 눈싸움을 하다 보면 볕 발은 약해져 해름 참이 되고 밥 먹으라는 어머니 소리에 이끌려 들어갔다. 저녁을 먹고는 담요를 들쓰고 이내 잠들었다. 자치기에 사방치기에 해거름까지 놀다가 저녁만 먹으면 솜뭉치가 되어 곯아떨어졌다.

두런대는 소리에 깨 보면 온 가족이 화롯가에 둘러앉아 비빔밥을 먹는 중이었다. 겨울밤은 길어서 한숨 자고 일어나 봐야 초저녁이다. 밤참문화가 나올 수밖에 없고 반찬은 주로 김치였으나 뚝배기에 안친 걸 보면 100% 돌솥비빔밥이다. 언제 먹어도 맛이 있고 겨울 하면 그래서 밤참이 떠오르는 것일까.

그런 비빔밥은 학교에서도 자주 먹었다. 4교시가 끝날 즈음이면 교실 안은 김치 냄새로 뒤덮인다. 등교시간에 지핀 난로가 3교시에는 벌겋게 타오르고 우리는 각자 싸온 도시락을 층층이 올려놓았다. 스무 개 남짓 도시락은 워낙 많아 위에서는 뜨겁기도 전에 밑에서는 눌어붙기 직전이었다.

마침내 점심시간이 되어서 열어보면 약속이나 한 듯 김치가 들어 있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게 여간 먹음직스럽지 않다. 제각기 반찬통에 별도로 담아 온 것인데 난로에 안치면서 바닥에 깔고 밥을 얹은 게 우리 먹은 비빔밥의 원조다. 수업시간에 번갈아가며 뒤바꿔 놓아야 했고 옮겨놓을 동안 은근히 데워지고 특유의 맛을 연출한 셈이다.

들기름도 없이 김치만 깔아 익힌 도시락 비빔밥이 특별한 맛으로 다가오는 연유가 뭔지. 생각하니 추억이라는 반찬 하나가 덤으로 들어갔다. 화력이 센 가스레인지에서는 익힐 수 없는 고향의 맛이다. 가스레인지에서 그 때의 난로 비빔밥처럼 노릇하게 익기를 바란 것 자체가 무리였는지도 몰라.

전통한식집이라 그런지 후식으로 도토리묵과 메밀묵까지 나왔다. 사락사락 눈까지 날리던 그 밤 석이버섯과 흑임자를 끼얹은 맛은 환상적이었다. 모처럼 돌솥 비빔밥을 먹으면서 추억의 곳간을 열어본 것이다. 가래떡 또한 김이 무럭무럭 나는 게 이제 막 떡집에서 가져 온 듯하다. 그것을 조청에 찍어 먹는 맛은 누구나 기억할 거다. 어릴 적, 설에 먹고 남은 가래떡을 화롯불에 구워서 조청을 찍어먹으면 똑같이 달고 맛있었는데….

어쩌다 어머니는 팥 앙금을 넣고 노릇하게 구운 수수부꾸미를 밤참으로 추가했다. 먹다 보면 삭풍은 누그러지고 우물 속처럼 깊은 겨울밤도 새벽이 되곤 했다. 음식 또한 맛보다 분위기를 타는 것일까. 밤참을 먹다 보면 눈도 자주 내렸건만 지금은 교통체증 때문에 꺼려한다니 참으로 당혹스럽다.

지금은 건강 때문에 저녁을 일찍 먹는 경향이 돼 밤참이라 해도 무리는 없었다. 가령 고구마를 쪄 먹을 경우 소화가 잘 안 된다지만 동치미를 곁들이기 때문에 걱정은 덜었다. 최근 야식으로 자주 먹는 라면과 후라이드 치킨을 보면 예전보다는 먹거리가 흔한데 토속적인 맛이 없다. 음식 맛이 어릴 때 같지 않다고들 한다. 화롯가에서 공부했던 도시락의 주인공들도 아득히 멀어졌다.

인스턴트 음식이 판을 치다 보니 함박눈처럼 쌓여가던 겨울 밤 얘기와 음식문화가 더욱 애틋해진다. 고향의 겨울이 그리운 것은 겨울밤에 얽힌 서정과 향수 때문이고 추억의 여백에는 밤참의 기억도 오롯이 적혔다. 밤 깊어 사위던 화롯불처럼 세월 강 여울에서 잃어버린 맛을 반추해 본다. 밤참은 기억 속의 맛으로 사라진 걸까. 나로서는 잊지 못할 향수였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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