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조금동두천 16.1℃
  • 맑음강릉 19.3℃
  • 맑음서울 14.6℃
  • 맑음충주 16.5℃
  • 맑음서산 15.9℃
  • 구름조금청주 17.7℃
  • 맑음대전 17.9℃
  • 맑음추풍령 16.7℃
  • 맑음대구 21.5℃
  • 맑음울산 21.7℃
  • 맑음광주 18.6℃
  • 맑음부산 19.3℃
  • 맑음고창 17.0℃
  • 맑음홍성(예) 17.5℃
  • 맑음제주 22.6℃
  • 맑음고산 16.9℃
  • 맑음강화 12.9℃
  • 맑음제천 15.4℃
  • 맑음보은 16.7℃
  • 맑음천안 17.4℃
  • 맑음보령 15.7℃
  • 맑음부여 17.5℃
  • 맑음금산 17.2℃
  • 맑음강진군 18.0℃
  • 맑음경주시 22.7℃
  • 맑음거제 19.1℃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이정희

수필가

바람이 시원하다. 하늘에는 구름이 떠가고 길섶에는 들꽃이 잔뜩 어우러졌다. 참나무 숲에서는 기둥을 쪼아대는 딱따구리 소리가 요란하다. 오늘 따라 도서관에 오는 학생들이 많다. 조용한 곳이어도 가끔은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러울 때가 있다. 이를테면 사람멀미였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를 듣다 보니 막힌 가슴이 탁 트인다.

산책로가 끝나면 벚꽃길이다. 푸른 하늘은 간 데 없이 붉은 꽃만 가득했다. 이름도 예쁜 꽃멀미였다. 멀미라 해도 투명한 꽃멀미가 있었구나. 아름드리 가지마다 톡톡 이파리가 분홍차일을 늘어뜨렸다. 나무 자체가 꽃구름이다. 모람모람, 꽃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나무는 어떻게 저리 많은 분홍꽃잎을 숨겨 두었다가 와락 터뜨리는 것일까.

소매가 넓으면 춤추기 좋다는데 산새들 노래에 맞춰 꽃들이 너울너울 수를 놓는다. 북적대는 통에 피해 온 것이 대박을 만났다. 조약돌 피하려다가 수마석을 만났는데 결과는 훨씬 좋았다. 멀미가 분명한데 어지럽기는커녕 또 다른 멀미 때문에 기분전환이다. 우짖는 새소리와 재깔대는 물소리 바람소리가 굉장하지만 백색소음이라 오히려 충전이 되는 것처럼.

멀미를 자주 했다. 버스든 기차든 올라타기만 하면 휘발유 냄새가 진동을 한다. 유람선을 탈 때도 파도가 치면 어지럽다. 어쩌다 대형마트에서 아이쇼핑을 하다 보면 그 또한 힘들었다. 번화가이다 보니 차멀미 사람멀미에 소리멀미까지 소음전쟁이었으나 그로써 꽃멀미를 알게 되었다. 차멀미는 대부분 겪었을 테고 내성적 기질이면 사람멀미도 있지만 소리멀미는 흔치 않다. 결국 도서관에서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게 일이다.

시끄러운 소리를 피해 오솔길을 걷다 보면 무심코 들려오던 풀벌레 소리. 산새들 노래와 계곡물 소리가 어우러지면 숲속 교향곡이다. 풀벌레 소리와 바위틈 솟아나는 옹달샘 소리를 모아 예쁜 소리모음을 엮기도 한다. 멀미 때문에 알게 된 꽃멀미가 딴에는 소중하다. 동녘 하늘이 밝아올 즈음 벙그는 꽃잎의 기척도 들린다. 누군지 모르나, 가끔 지나가면서 듣던 외딴 집의 첼로 소리까지 자늑자늑 정겹다.

한낮이 겨웠다. 눈을 드니 다시금 펼쳐지는 꽃 터널이 예쁘다. 얼마 후에는 지고 말겠지만 초록멀미가 기다린다. 한여름의 갈맷빛 녹음 또한 멀미제거로는 최적이었다. 초록은 건강한 빛깔이다. 뒤미처 가을이 되면 단풍멀미도 있다. 노을처럼 핏빛처럼 붉은 빛깔은 저녁노을을 보는 듯 환상적이었다.

단풍이 지고 나면 겨울이다. 높파람에 세상은 동토의 침묵에 덮인다. 눈을 들면 모두가 회색 모드로 바뀌는데 특별히 겨울나무는 악기가 된다. 바람 불어 썰렁한 중에도 저마다 속울음으로 겨울을 노래한다. 더 이상 좋은 멀미약은 없다고 했는데 함박눈이 남았다. 백설의 원시림을 봐도 눈은 환히 열렸다. 몇 번 함박눈이 쌓이면 눈 건강에는 최적이었다.

별난 체질 때문에 수 십 년을 고생했는데 초록멀미와 단풍멀미 함박눈 멀미까지 정점을 찍었다. 남들은 생각지도 못했을 멀미에 시달릴 동안 덤으로 주어지는 행복이었다. 멀미를 이기는 것은 멀미였을까. 맞불처럼.

짜증스러웠던 멀미가 꽃과 초록 그리고 단풍과 함박눈 백신을 만들었다. 지금 누리는 백신의 혜택이 그 동안 참아왔던 멀미의 항체였다면 묵묵히 참아야 하리. 백신은 곧 각종 병원균으로 만든 항체였다. 수많은 멀미에서 추출한 자연성 면역이야말로 드난살이에도 깔축없는 초강력 지침이 될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