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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오래 전 로또에 당첨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선 자기가 살 전원주택을 지었다고 한다. 남은 돈은 본인의 노후자금과 아들의 사업자금으로 떼어두고 동기간들에게도 똑같이 나누어주었다는 얘기가 제 3자가 들어도 흐뭇하다. 모처럼 좋은 집 장만하고 부모 노릇도 해보고 인심도 쓰게 되었으니 괜찮다. 그에 비해 갑자기 큰돈이 생기면서 도박이나 투기에 빠지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복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화가 되는 게 남의 일 같지 않다.

복권을 사 본 적이 없다. 당첨되는 게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지만 모처럼의 행운도 조심스럽게 누리지 않으면 화가 될 수 있다. 옛날 한 농부가 소원을 들어 주는 가락지를 얻었다지. 그러나 기회는 한 번뿐이라 선뜻 말할 수가 없었다. 값이나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보석 가게를 찾았다. 주인은 싸구려 반지를 갖고 와서 가격을 물으니 시큰둥했다. 순진한 농부는 요술 가락지라고 자랑했다. 거짓말할 사람이 아닌 것을 본 주인은 술과 음식을 먹이고는 잠들 때를 기다려 바꿔치기해 버렸다.

농부를 보낸 뒤 주인은 십만 마르크를 요구했다. 천정에서 수많은 돈이 떨어지고 보석 장수는 돈더미에 깔려 죽었다. 집으로 돌아온 농부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얘기를 들은 아내가 논밭을 사자고 했으나 그 정도는 노력하면 될 거라고 했다. 열심히 살다 보니 전답이 생기고 살림이 늘었다. 아내도 딱히 졸라대지 않고 열심히 일만 했다. 다른 소원이 거론될 때도 보물이 있는 한 반드시 생길 거라고 타일렀다.

더 갖고 싶은 게 없을 만치 풍족해지자 농부 내외는 가락지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들이 죽고 난 뒤 가락지는 땅에 묻혔다. 요술 가락지 때문에 죽은 보석 가게 주인과 비교하면 참으로 대조적이다. 넝쿨째 들어오는 호박도 경건한 마음으로 누릴 때라야 영구적이다. 평생 먹고 살 정도의 복을 받는다 해도 모처럼의 행운에 빠져 허송세월하면 무가치하게 끝난다.

복권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끔 오래 된 그 동화가 생각난다. 진짜를 가로채고도 돈에 깔려 죽은 보석장수와는 달리 가짜를 끼고 살면서도 요술 가락지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소원을 이루었다. 나쁜 사람에게 있으면 좋은 물건도 화가 되지만 좋은 사람에게 있으면 나쁜 물건도 기대 이상의 가치가 부여된다. 엄청난 행운도 이따금 화가 된다는 것은, 나쁜 일도 받아들이는 생각에 따라 복으로도 바뀐다는 의미다.

소원을 말하기도 전에 잃어버린 가락지가 복으로 자리바꿈된 것은, 무엇이든 열심히 일하면 이룬다는 믿음 때문이다. 소원이 생각날 때도 섣부르게 꺼내지 않았다. 농부의 아내 역시 남다른 데가 있었다. 그의 생각이 건실하다 해도 보통 사람 같으면 별의별 수단을 써서 졸랐겠지만 조신한 여자는 다소곳하게 그 말을 따랐다. 농부가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성품을 알았기 때문이고 가정도 온전히 지킬 수 있었다.

소원을 말할 기회도 오직 한 번이라 더욱 신중을 기했다. 소원을 말했어도 묵묵부답이었을 가락지다. 진짜로 착각했을 때도 말하지 않은 걸 보면 열심히 사는 게 생활 신조였겠지. 우리를 끝까지 보호해 주는 것은 벽돌장 올리듯 정직하게 쌓는 행운이었다. 보석가게 주인이 복권 당첨에 버금갈 요술 가락지에 탈이 난 것도 명색 없이 날뛴 결과였으리. 내 것이라 해도 쉽게 들어온 행운은 조심스럽거늘 탐욕까지 부렸다.

행운은 그렇게 우리를 테스트한다. 뜻밖의 행운에도 흥청망청 쓰기보다는 열심히 살면 무엇이든 이룰 거라면서 더 큰 행운을 추구하는 거다. 그런 자세가 아니면 어쩌다 주어질 때도 무효가 될 수 있다. 행운을 잡았다고 기고만장하는 것은 행운에의 모독이다. 모처럼 행운일수록 유리병 속에 든 구슬 같아서, 금이야 옥이야 다루지 않으면 금방 다치고 말 거다. 가락지보다 복권보다 큰 위력은 땀 흘려 벌어들이는 경건한 자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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