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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창문을 열었다. 멀리 느티나무 우듬지에 까치집이 얽혀 있다. 높파람에 들려오는 바람소나타.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2악장 멜로디가 떠오른다. 바람의 활줄로 그어대는 듯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멜로디가 오늘의 날씨와 어울리는 듯 별나게 마음을 끈다.

겨울 분위기에 너무 잘 맞는 곡으로 차가운 비가 풍경을 적시는 부분을 묘사했다. 겨울비는 썰렁하지만 듣다 보면 얼어붙은 냉기가 녹는 기분이다.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으나 화롯가에서 밤을 굽고 불을 쬐는 풍경이 연상된다.

그 부분이 따스하게 다가오는 것도 1악장과 3악장에서 퍼지는 스산한 바람 때문이다. 매서운 풍경과 추운 날씨에 따스한 아랫목과 화롯불 정경이 더욱 고조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혹한에 떠는 겨울 뉘앙스가 훨씬 더 감미로운 느낌이었던 것.

잠깐 추억의 비밀통로를 들어가 보았다. 먼 훗날 아름다운 기억은 대부분 힘들 때였다. 2악장의 진수는 삭풍이 휘몰아치는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아랫목처럼 따스한 겨울 이미지였다. 잎 하나 없이 바람에 떨고 있는 한 그루 나무의 영상이 지나갔다.

나무는 오늘도 눈보라 치는 언덕에서 겨울을 밀어내는 중이었다. 귀 끝이 아리도록 추운 날, 앙상한 가지로 나야 되는 겨울나무 일대기가 어찌나 눈물겨운지 몰랐다.

가끔 겨울나무가 작곡한 바람교향곡을 듣는다. 언제부턴가 나도 내 안에 겨울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앙상한 가지의 멜로디가 기억의 후미를 돌아갈 때 우듬지에서는 휘파람 같은 소리가 떠돌았다. 한그루 겨울나무가 악기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특별히 바람의 채찍에 맞을 때마다 현이 떨리면서 노래하는 게 바이올린을 닮았다. 아무도 오지 않는 둔덕에서 그리움을 방류해 오던 겨울나무 노래가 짠하다. 뼛속 깊이 스며드는 멜로디가 그렇게나 감동적이었을까.

앙상한 겨울나무가 추워 보이지만 그렇게 겨울을 난다. 잎을 떨어뜨리고 물기를 빼야 얼지 않는다는 과학적 논리는 차치하고라도 그렇게 참아야 봄이 오고 죽은 땅을 깨운다는 수많은 음표의 노래를 듣는다. 추울수록 봄이 더 찬란할 거라는 후렴구와 함께.

봄도 막상 쉽지는 않다. 얼음이 녹고 강물이 풀릴 때도 입을 다문 채 시치미를 떼고 있었지. 잠깐 서곡이 울리곤 그 새 봄이 된 듯 부산하지만 여전히 추웠다. 봄이라는 소망 때문에 바람 불고 눈보라치는 악장이 더욱 정겨운 것도 이색적이다. 삶도 힘들지언정 참고 견디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리.

느티나무도 잎 푸를 때가 좋았으나 지금 역시 까치집과 더불어 분위기가 맞다. 바람은 을씨년스러워도 어느 순간 겨울바다 실려 가는 돛배처럼 낭만적이다. 잿빛 하늘에 찍히는 풍경도 고즈넉했다. 그 느낌이 겨울에도 이어진 것은 내가 들은 2악장 그대로다. 썰렁한 겨울이지만 찬바람도 때로는 그리움으로 남는다고나 하듯.

잿빛으로 가라앉은 풍경 속에서 듣는 바람소나타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사계라고 하는 제목대로 연주를 들으면 사철 모두 아름다운데 초겨울에는 좀 더 서정적이다.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는 훨씬 따스한 음률로 데워진다. 추운만큼 따스해진다. 겨울이 가야 봄이 오듯 시련 뒤에 울려 퍼질 삶의 찬가를 꿈꾸는 것이다. 멀리 바람 소나타에 귀 기울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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