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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백로가 되었나 보다. 풀밭에 이슬이 잔뜩 맺힌 걸 보면. 어느 날은 바위틈 버섯이 까치발로 서 있다. 목백일홍에 올라앉은 이슬은 분홍여울로, 소나무에 맺힌 이슬은 초록비로 쏟아질 듯하다. 이슬떨이로 툭툭 칠 때마다 바짓단이 흠뻑 젖는다.

이슬이라고 부르면 입 속에 동그란 뭔가가 맺히는 것 같다. 날아가는 산새와 실바람소리도 묻어날 법하다. 진주이슬이라고 부르면 될 성 싶다. 누군가 밤새 둥글린 거라고 생각하면 참 예쁜 보석이다. 부끄러워서 몰래몰래 내려왔을 것이다. 누가 볼까 봐 가만가만 흩뿌렸을 텐데 뜰 가득 맺히면서 들통이 나 버렸던 것.

어떻게 그렇게 하얀 이슬인지 탐색해 본다. 우리 집 잔디밭만 봐도 온종일 파란 하늘을 이고 있었다. 어느 날은 징검다리처럼 떠가는 수제비 구름과 날아갈듯 새털이불에 초원의 양떼처럼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 집은 또 언덕바지에 있으니 뾰족지붕에 걸쳐 있던 구름에서 왈칵 쏟아졌는지도 몰라. 고여 있는 물은 파랗지만 파도가 치면 하얗게 보이듯 파란 하늘도 낱낱 부서지면서 새하얀 이슬로 아롱졌다. 그 이슬 받아 하루하루 가을로 영근다.

가을도 물들이는 계절이었으니까. 풀밭에서 이슬내리기염으로 시작할 때는 모르겠더니 깻잎과 콩잎을 위시해서 금빛 들판과 은행잎 단풍까지 갈수록 현란해진다. 이슬내리기염을 필두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을 텐데 이렇다 할 기척이 없다. 염색이라면 보통 문양과 색상을 정한 뒤 색소를 풀어서 끓이는데 어찌된 거지?

이슬은 수증기로 엉긴 작은 물방울이다. 초가을이 되면 공기 중의 수증기가 이슬점 이하로 내려간다. 가장 많이 맺힐 때가 이름 그대로 백로였으며 그 때부터 본격적인 익힘에 들어간다. 벼가 팰 때는 입추 나락 크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고 하듯 시끌벅적했어도 처서를 지나 백로 어름에는 숙이고 또 숙이면서 익는다.

처서와 춘분 사이에 드는 절기 백로는 농사일도 얼추 끝나고 잠깐 일손을 놓는 시기다. 다가올 추석을 위해 벌초를 하거나 문창호지를 새로 바르는 등 농사일 때문에 등한시했던 집안을 보살피기도 한다. 여름내 농사꾼이 가을 신선으로 급상승하는 시절이다.

뒤미처 금빛들판으로 바뀔 테니 백로가 지나서는 논에 가 볼 필요가 없다. 백로가 되도록 벼 안 팬 집에는 가지도 말라나? 어지간한 작물은 익는 시점이지만 녹두처럼 여름에 이미 땄어도 추가로 익기도 한다. 백로 가지에 핀 고추 꽃이 뒤늦게 효도한다. 웬만치 딴 후였으나 이듬으로 또 맺히면서 가으내 먹을 수 있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쌀이 준다지만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을 늘인다. 희망적이다.

내 인생의 이슬점을 점검해 본다. 사는 게 행복할 때는 바람에 모두 증발되고 말았으나 힘들 때는 눈물과 탄식이 물방울로 엉기면서 특별한 시나리오로 바뀌었다. 이슬의 고향을 찾아가 보면 깊은 밤 별들의 눈물과 달빛 올 잣는 밤새의 눈물이 있었던 것처럼. 이슬을 잔뜩 품어서인지 백로를 전후해서는 풋밤이 익고 머루다래까지 조발조발 익곤 했다. 나는 또 풀잎 이슬을 보면 세상 보석을 다 가진 듯 행복한 사람이었지 않은가.

마음의 텃밭에도 이슬은 맺힌다. 고난과 소망의 일교차가 벌어질수록 영롱한 이슬 밭으로 바뀐다. 우리 역시 소망의 날 때문에도 이슬점은 필요하겠지. 이슬을 뿌리면서 익히는 가을 속내처럼, 인생 또한 마침표도 온점도 아닌 이슬점을 찍으면서 물방울 보석처럼 빛날 때가 있으리. 그것을 소망의 목록에 새삼 추가해 본다. 가을로 접어드는 간이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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