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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휴대폰을 챙겼다. 다양한 성능에 심플한 디자인은 볼수록 호감이 간다. 전화는 물론 시계나 달력으로도 유용하다. 편지 대신 즉석에서 하고 싶은 말을 보낼 수 있다. 어떤 내용이든 저장이 가능하고 계산기가 따로 없어도 몇 번 두드리면 끝난다. 음악을 들으면서 인터넷까지 할 수 있고 사진을 찍으면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선명하다.

우리 애들을 보니 잘 때도 머리맡에 두고 시간을 확인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자명종 대신 휴대폰 음악을 들으면서 일어난다. 잊고 나가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요긴한 물건이다. 유치원 꼬마들까지 엄마와 통화하는 걸 보았다.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라는 게 느껴진다.

엊그제 휴대폰을 교체하게 되었다. 주문하고 한 사나흘 걸리는데 왜 그렇게 지루한지 몰랐다. 특별히 중요한 전화가 오는 것도 아닌데 뭘 잊고 나온 것처럼 허전하다. 그럭저럭 사흘 만에 휴대폰을 가져왔다. 그제야 안정이 되는 것 같다. 하루라도 없으면 안 되겠구나.

솔직히 특별한 기능을 많이 쓰는 것도 아니다. 전화번호도 어지간하면 외워두기 때문에 저장할 필요가 없다. 성격이 급해서 문자도 잘 보내지 않아 통화 외에는 잘 쓰지 않는데도 그런 걸 보니 여러 가지 기능을 알고 쓰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편할지 상상이 간다. 과학의 힘으로 만든 거라고는 해도, 없을 경우 생활 패턴에까지 영향을 줄 거라면 어쩐지 걱정스럽다.

한 신발장수가 원숭이에게 꽃신을 선물했다. 고맙게 생각한 원숭이는 열심히 신고 다녔다. 그 다음 또 한 번 얻어 신었다. 요긴하게 잘 신고 다녔으나 신발장수는 더 이상 주지 않았다. 맨발로 걸어 다녔더니 굳은살이 없어졌는지 발바닥이 아프다.

할 수 없이 신발장수를 찾아갔다. 값이 엄청나서 그냥 돌아왔다. 며칠 견디지 못하고 다시 찾아갔다. 값이 더 뛰었으나 맨발로는 살 수 없겠다 싶어 한 푼도 깎지 못하고 사 왔다. 꽃신에 길들여진 발바닥이 맨발로는 걷지 못할 만큼 보드라워진 탓이다.

휴대폰이 없을 때 지장을 받는다면 원숭이의 시행착오는 간단히 끝나는 게 아니다. 편리한 기능대로 전화번호나 가족들의 생일 등을 모두 저장하는 거지만 잘못해서 날아가면 그보다 낭패가 없다. 거저 받은 꽃신 또한 예쁘고 편리한 대신 맨발로는 걸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꽃신 외에 다른 신발로 적응했더라면 죽을 때까지 비싼 꽃신을 사 신어야 하는 고충은 없었을 텐데 유감이다.

맨 처음 공짜로 받은 게 화근이었을까. 우리도 번호 이동 없이 공짜로 받는 일이 많다. 요금에 포함이 될 거라고 짐작하면서도 새로운 디자인과 성능에 매료된다. 나 역시 새로 산 것이라 아직 멀쩡한데도 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별반 아까운 생각도 들질 않으니 그만치 만족스럽고 만능기계라기에 손색이 없다. 지하철이든 공원이든 심지어 길을 가면서도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다. 한시도 반시도 안절부절 못하는 필수품이 되었다. 꽃신의 마력 그대로이다.

신발업체의 판로 무대는 때로 아프리카가 제격이다. 신발을 신지 않는 배경이 그 마인드였다. 절대 신을 것 같지 않았던 원주민들도 한번 신게 되면 그 다음은 비싸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한다. 휴대폰 역시 선의의 횡포가 염려스러웠으나 경쟁업체가 많아서 그나마도 완화되는 성 싶다.

그렇더라도 우리로서는 빠져 들지 않는 게 현명하다. 없으면 불편한 정도로 끝나야지 혼란을 초래할 만큼 집착하는 건 문제다. 참 잘 쓰면서도 이따금 두려워지는 휴대폰, 그런데도 애착이 가는 걸 보니 나 역시 장담할 수가 없다. 꽃신에 빠져버린 원숭이를 비방하기 전에 나도 그럴 소지가 있음을 돌아봐야겠다. 편리하고 스마트한 것 다 좋지만 원숭이의 꽃신처럼 울며 겨자 먹기로 길들여진다면? 아니 나도 모르게 벌써 그렇게 된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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