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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안녕하세요?"

폭탄처럼 터지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희주와 주혁이가 나와서 반긴다. 목소리 큰 두 녀석의 인사가 함성처럼 시끌벅적했다. 그리고는 춤이나 추듯 아파트 계단을 돌아가면서 환영 쇼를 벌인다. 문 앞에는 보행기를 타고 방글방글 웃는 주영이까지 보였다.

솥발이 남매라고 했지. 한 배에서 태어난 똑같은 강아지들 솥발이. 녀석들이야 두 살 두 살 터울은 져도 볼수록 비슷해서 쿡쿡, 웃음이 난다. 눈이 크고 웃는 모습까지 똑같다. 나가면 더러 쌍둥이 아니냐고도 한단다. 요즈음 세상에 3남매를 키우는 게 보통 일이랴마는 막내로 태어난 녀석 때문에 솥발이 남매라는 특별한 닉네임을 짓게 되었다.

옛날 한 집에서 불 지폈다. 지금 같은 초여름이었겠지. 메주를 쑤고 시래기를 삶을 때도 있지만 겨울이라서 애들이 나와 놀기는 춥다. 상상은 자연히 간장을 달이거나 혼례를 앞두고 음식을 만드는 날로 이어졌다. 솥을 걸기 전에는 멀쩡 닦는다. 이어서 불을 지피는데 갓 태어난 새끼 강아지가 달랑달랑 뛰어나왔을 거다.

뒤미처 삼형제가, 우리 손자들처럼 삼남매일 수도 있으나 터울 잦은 녀석들이 뜰에 나와서 어울렸으리. 날씨도 좋고 경사까지 겹쳤는데 불 때는 화덕 옆이다. 똑같이 생긴 솥발과 강아지와 귀여운 자식들을 보면서 깨알 같은 행복을 누렸을 거다. 흐뭇한 마음으로 보는 동안 우르르 끓어 넘고 그럴 때마다 멀쩡 닦아내고 화덕에 얹힌 솥발을 보면서 생각이 많았겠지.

강아지처럼 동시에 태어나지 않는 이상 빼닮을 수는 없지만 솥발은 약간 어긋나도 기우뚱한다. 마당에 걸 정도면 서 말 들이는 보통이고 무게를 받치는 솥발에 치중한다. 요만한 오차도 없이 똑같아야 된다고 볼 때, 바둑이면 바둑이 점박이면 점박이였을 새끼 강아지가 판에 박은 듯해서 대뜸 솥발이었겠다. 무쇠 솥 발도 딱 3개였다고 하면서.

우리 애들 어릴 때도 솥 거는 일은 흔했다. 먼저 솥을 닦게 마련이고 세 개의 솥발이 천연 비슷했다. 나야 일 년에 두 번 정도지만 솥발이라고 했던 부모들은 허구한 날 불을 때면서 아주 익숙했겠지. 어미 개 역시 멀찍이서 지켜보았을 거고 새댁들은 덩달아 애틋한 마음이었을까. 제 새끼 위하는 거야 뭐가 다르겠느냐고 하면서.

오래 전 풍경이 떠오른다. 간장을 달일 때는 줄장미가 한창이었다. 작은애는 걸음마 중이고 큰애는 4살이었다. 불 때는 옆이라 오기만 하면 질색인데 녀석들은 고분고분 말 듣는답시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잘못 굴러 떨어질 것도 걱정이다. 부랴부랴 데려오면 화덕 주변에서 천방지축이다. 솥발이와는 달리 아들 형제였으나 솥을 걸고 불을 지피던 기억이 잡힐 듯하다.

솥발처럼 똑같이 생긴 손자들 삼남매가 어기차다. 대부분 솥발이도 잘 모르는데 얘깃거리가 많다. 똑같은 새끼강아지 솥발이는 솥발을 닮고 나는 손자들에게 솥발이남매라고까지 했다. 우리 아이들 키울 때는 전혀 몰랐다. 나란히 둘러앉은 게,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짜는 모습이다. 솥발 세 개가 버티면 닷 말 밥을 지어도 깔축없다.

솥발이라고 하면 또 정족지세가 있다. 밥을 잘 짓기 위해 오순도순 떠받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막강한 세력이 대립하는 형세다. 둘이 싸워서 하나가 이길지언정 두 개의 발로 버텨야 되는 역기능 상황이다. 합병을 해서 무게는 같을지 몰라도 수평이 맞지 않고 기우뚱한다.

솥발이보다 약간은 골치 아픈 말이다. 우리 애들 또한 실력으로 버티는 정족지세보다 솥발처럼 기대고 의논도 하면서 도담도담 자랐으면 싶다. 한 배에서 나온 강아지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볼 때마다 꿀같이 떨어지는 자식 사랑을 느꼈을 법하다. 언젠가 날 잡아 고추장 담글 때는 아들네가 올 수 있고 내 상상했던 솥발이 풍경이 펼쳐지면 금상첨화일 텐데. 나는 어쩔 수 없는 솥발이들 남매의 피붙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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