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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8.30 15:24:13
  • 최종수정2020.09.02 13:21:32

이정희

수필가

바닥으로 수많은 감이 떨어져 있다. 진즉에나 떨어지든지 마늘통만한 것들이 굴러다닌다. 아까운 생각이 들었으나 동생은 그렇게 해거리가 된다고 했다. 이태 전에는 한 그루에서 무려 100접은 땄다고 한다. 곶감을 만들고도 남아서 홍시까지 안쳤다는 것인데 지금은 저절로 솎음이 되었다는 투다. 장마철도 되었지만 한 달 전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단다. 날씨에 의해 떨어지고 나무가 우정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겠다. 아무리 그래도 많이 따는 게 좋을 테지만 나무로 보나 오래 먹는 거로 보나 그게 더 좋다는 뜻일까.

해거리를 통해서 원만한 성장이 이루어지는데 최근 과수원의 감나무는 해거리를 못하게 인위적으로 거름을 잔뜩 주고 살충제를 친다고 한다. 여타 과일나무보다 유난히 해거리를 하는 감나무에게 해거리를 하지 못하도록 압박을 준다니 수확량은 많을지 몰라도 힘에 부친다.

요즈음 텃밭에 가면 호박이 지천이다. 가지며 고추도 얼마나 달리는지 빠끔할 틈이 없다. 비가 오지 않는 바람에 꽃피는 대로 수정이 되는 까닭이었다. 꽃이 떨어져야 쉴 여지가 있고 그래야 서리거둠 때까지 먹으련만 이러다가 찬바람이 나기도 전에 시들지 않을까. 조금씩 오래 두고 먹든 한번에 푸지게 먹든 마찬가지였으나 서리가 내리기 전의 애호박 수내기가 제대로 달릴지 걱정스럽다.

가지도 워낙 더운 날씨다 보니 많이는 달리는데 초가을 흑단나무에 참기름을 친 것 같이 빤들빤들한 게 드물다. 고추 역시 저렇게 달리다가 초겨울 집고추도 따지 못하는 건 아닌지. 식량 고추는 흔할지 모르나 소금에 삭혔다가 먹는 것도 괜찮다. 그나마 장마가 시작되면서 달리는 기세가 조금씩 주춤하는 게 다행이다. 해거리야말로 모든 작물의 덕목이고 미덕이었다는 느낌.

아까운 열매가 떨어지기도 하면서 휴식을 주고 탐스럽게 달린다. 걱정과는 달리 잘 열린다 해도 해거리를 못하게 변수를 쓰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감나무가, 툭하면 부러질 만치 약하다지만 그걸 해거리 삼아 조율하는 것도 자동 조절 시스템의 일종이다.

과일이든 작물이든 번차례로 해거리가 되면서 균형을 잡아나간다. 구태여 해거리는 아니지만 겨끔내기로 적절히 달려야 괜찮다. 올 가을 도토리가 흔하면 내년에는 밤 혹은 대추가 잘 달리는 격이다. 해거리라지만 모든 나무가 똑같이 많고 적게 달린다면 오히려 뒤죽박죽 혼란이 오고 말 테니까. 날씨와 절기에 따라 풍년이 드는 나무의 목록이 달라지는 거지만 그렇지 않을 때라도 감나무처럼 스스로 조절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 참 신비스럽다.

눈감으면 떠오르는 한 그루 나무. 자세히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하늘까지 담뿍 들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던 감이 제풀에 떨어지고 장마에 떨어지고 아까운 생각이 들었으나 가지 사이로 보니 떠가는 구름까지 예쁘다. 잔뜩 달려 있을 때는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해거리를 앞세워 휴식만 취하는 것 같아도 해거리 여백의 효과가 그럴 듯하다.

해마다 잘 되는 것도 좋지만 원하는 대로 착착 이루어지면 열매와 꽃에 급급하다가 마침내 쓰러질 수 있다. 뭔가 진전이 없다면 지난 해 소득이 많았거나 나중에 잘 풀릴 조짐으로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때도 내일을 바라보고 지지부진 상황을 견디면서 회복의 과정으로 바꾸는 거다.

무작정 많이 달고자 하면 오히려 지치고 힘들고 실망한다. 해거리야말로 두 걸음 위한 한 걸음 후진이라면 그 삶은 탄력이 붙는다. 과일도 지나치게 달리는 것은 좋지 않은데 하물며 원대한 안목으로 나가는 삶이다. 목표가 크고 광범위할수록 필요한 덕목이라고 되새겨 본다. 목적을 향해 가는 삶이라도 조금은 쉬어가야 된다는 것, 그래서 해거리가 필요한 것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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