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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모처럼 제사상에 다식을 올렸다. 깨다식과 송홧가루 다식과 송화다식이다. 백화점에서 사 온 것이었으나 제삿날이면 다식판에 박아내던 정경이 떠오른다. 아버지와 함께 큰집에 당도하면 나물과 산적 등은 이미 장만한 후였고 큰어머니와 사촌 언니는 다식판을 벌여 놓고 흑임자에 꿀을 넣고 반죽을 하고 있다. 곱게 뭉쳐지면 다식판에 박아내고 곧 바로 제상을 차렸다.

제사를 지낼 동안의 관심사는 다식이었다. 도착하는 즉시로 흠집이 난 것 몇 개를 먹은 뒤였으나 그것만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았다. 제사가 끝난 뒤 밤 대추며 곶감을 바구니에 담아 내 가는 동안 광으로 가서 제상에 올리고 남은 다식을 꺼내먹었다. 똑같은 맛일 텐데도 몰래 먹어서 더 맛있는 것 같았다.

다식은 신라와 고려시대에 생겨난 한과로 차를 마실 때 곁들이는 음식이다. '다식'이라고 할 때의 다 자(子)는 '차(茶)'를 나타낸다. 밤 가루와 콩가루 등을 꿀에 반죽하여 박기도 한다. 그런데도 남다른 정성이 느껴진 것은 다식에 새겨진 글씨 때문이다. 백화점에서 사 온 다식은 간단한 문양이었으나 어릴 때 먹은 다식에는 복(福)자를 새기고 혹은 목숨 수(壽)와 기쁠 희(喜)자가 새겨져 있었다.

다식은 종류가 많다. 앞서 든 것 말고도 쌀 다식이라 하여 밥을 지어 말린 후 노릇하게 볶고 빻아서 체로 친 뒤 꿀과 소금을 넣고 반죽한 게 있다. 검은 깨를 씻어 물기를 빼고 살짝 볶아 기름이 나도록 오래 찧어서 꿀로 반죽한 다음 박아낸 것은 흑임자다식이다. 그 외에 또 송홧가루를 꿀로 반죽하여 박은 송화다식과 오미자 물을 준비하여 녹말가루에 섞어 반죽하는 분홍빛깔의 녹말다식이 있고, 그럴 때는 특히 다식판을 깨끗이 닦아서 빛깔이 곱게 되도록 한다.

내가 특별히 탐을 낸 것은 흑임자다식이다. 송화다식과 콩가루로 만든 다식은 향기가 좋고 고소했으나 먹다 보면 목이 깔깔해진다. 흑임자다식은 깨 자체에서 기름이 스며들어 그런지 아무리 먹어도 괜찮았다. 집에 와서도 며칠 동안 주머니에 넣어 둔 것을 야금야금 꺼내 먹으며 은근히 제삿날을 기다리기도 했다. 차를 마실 때 곁들이는 걸 보면 일종의 과자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즈음 흔히 볼 수 있는 과자들과는 격이 다르다.

다식을 만들 때는 반죽을 일정한 크기로 떼어낸 뒤 찍어낸다. 특기할 것은 반죽을 떼어서 손바닥에 넣고 비벼대는 것부터가 치성을 드리고 소원을 빌 때 양손을 맞잡는 모습 그대로다. 송편을 만들 때 역시 반죽부터 시작한다. 다식처럼 일정한 크기 떼어낸 뒤 속을 파서 고물을 넣고 아물린 뒤 쪄 낸다. 다식이, 송편을 만들 때처럼 복잡하지는 않아도 가문 고유의 특징을 나타내는 글자와 무늬를 넣어 새기기까지 했다니 음식 하나에 깃든 정성치고는 확실히 남다르다.

우리나라 음식에는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반도의 끝에 자리 잡은 탓으로 중국과 일본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멀쩡한 사람이 전쟁터에 나가서 죽거나 부상을 입고 돌아오는 일이 흔했다. 아들이나 혹은 지아비가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자세가 음식을 만들 때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나타냈으리. 요즈음의 식품 문화를 보면 찬거리는 고급화되었어도 다식이나 송편 등 그 때의 음식처럼 정갈한 운치가 없다.

꿀만 먹을 수 있어도 배부르던 시절 다식판에 박아낸 것은 음식 이상이었다. 흑임자는 물론 밤 가루와 송홧가루는 얼마나 고소했던가. 지금도 그렇게 해 먹을 수는 있겠지만 그 때의 맛은 나오지 않을 듯하다. 송홧가루가 나오는 소나무는 공해에 찌든 지 오래다. 수입 깨가 판을 치는가 하면 밤도 달착지근한 토종이 드물다. 예쁘게 찍어내는 다식판도 금속이 아닌 나무로 만들었다. 제사 때마다 몰래 몰래 먹은 다식이야말로 무독성 건강식이며 웰빙식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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