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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어느 새 12월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 접어드니 예의 또 감회에 젖는다. 특별한 일을 해 보고자 했던 새해 벽두의 결심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매일 그런 날이었을 텐데 공연한 일에 시간을 허비한 듯 마음이 수수롭다.

어떤 사람이 아내와 사별을 하게 되었다. 유품을 정리하다가 스카프 한 장을 발견했다. 몇 해 전 함께 여행하다가 구입한 것으로 아주 곱고 비싼 스카프여서 차마 두르지 못 한 채 특별한 날만을 기다리다가 죽음을 맞았다. 너무도 애통한 그는 친구에게 "절대로 소중한 것을 아껴뒀다가 특별한 날에 쓰려고 하지 말게"라고 충고했다.

우리 사는 매일 매일이 곧 특별한 날이다. 한 장 남은 달력을 볼 때마다 뭔가 해 보겠다 하고는 금방 흐지부지되었던 신년 초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는 또 지금 같은 시점에 서 있게 되고 후회스러운 마음에 "새해부터는 다시금 시작해야지"라고 결심하는데 앞서 나온 이야기 때문인지 유독 생각이 많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 때부터라고 벼르기보다는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

좋은 물건이 있으면 날 받아 꺼내게 되지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삶의 정서와는 어긋난다. 내일을 무시하고 오늘에만 집착하라는 게 아니라 그러한 자세가 정작 오늘 시작해도 늦을 수 있는 일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내일을 모르는 하루살이가 앞 뒤 생각 없이 등불에 뛰어드는 건 경망스러울지 모르나 오늘에 승부를 거는 자세만큼은 본받을만하다.

사실 나는 물건을 별로 아끼지 않는다. 어쩌다 외출복을 사도 금방 해지고 만다. 남들은 옷장에 두고 결혼식 등 이름 다른 날만 입는다는데 이웃에 놀러 갈 때도 서슴없이 입는다. 이 삼년이면 낡고 미어져서 또 다시 사야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옷장에 둔 채 유행이 지나서 입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남들 또한 속내는 모른 채 비싼 옷만 입는 줄 안다.

늘 입는 옷이 그 정도니 특별한 날에는 얼마나 멋지게 입을지 헤아리는 듯하다. 막상 그런 날이 올지언정 별반 다를 것도 없지만 평상시에도 외출하는 것처럼 입는 게 더 합리적이다. 아울러 옷뿐이 아닌 내 생활 방식도 그렇게 유도하면 여차할 때 아쉽고 유감스러운 경우는 없을 것이다. 무슨 일을 할 때 잠시 보류하고 좋은 방법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면 그런 식으로 사는 것도 나쁠 것은 없지 싶다.

오늘은 한 해라는 커다란 퍼즐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에. 1년 365일은 곧 하루 하루의 작은 퍼즐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크고 작고 모양도 가지각색인 가운데 한 개만 빠져도 헐거워지듯 우리 삶의 낱낱 퍼즐은 소중한 존재고 그만치 중요하다. 하루하루가 그냥 평범했다면 영향을 받지 말아야 되거늘 여파를 준다면 오늘의 의미는 작은 게 아니다.

오늘을 무심히 보내면 특별한 날에도 무신경해진다. 비싼 스카프가 무용지물이 된 게 하루를 무심히 흘려보낸 결과는 아니지만 내일에 밀려 소홀해질 것이 문제다. 제아무리 비싸고 좋은 거라도 옷장 속에서 묵힐 경우 싸구려 스카프와 무에 다르랴. 하다못해 이웃집에 갈 때도 우아하게 두르고 나갔더라면 유명을 달리 했을 때 그리 속상하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 부분이다. 특별한 날을 위해 간직해 둔 스카프는 참으로 아쉽지만 먼 훗날도 외면할 수는 없다. 하루 죽을 줄 모르고 열흘 살지만 오늘도 그만큼 중요하다. 뭐랄까, 이 하루를 마지막으로 여기면서 특별한 날의 초석으로 삼는 것이다. 내일도 중요하지만 오늘은 또 어제 죽은 누군가의 간절한 내일이었기 때문에.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던 것이다. 한해를 돌아보는 아쉬움 때문에도 남은 날들이나마 최선을 다하고 싶다. 지금 쌓는 한 장 벽돌의 퍼즐은 그 하나만 삐끗해도 방죽이 무너질 정도의 타격을 준다는 사실을 거듭 돌아본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시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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