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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영정 사진 속에서 육촌 오빠가 웃고 계신다. 형부가 부쳐 온 300$를 봉투에 넣으면서 순간 착잡했다. 엊그제도 전화통화를 했었다. 이승과 저승은 눈 깜짝할 동안의 일이고 그렇게 천양지차로 바뀐다.

오빠는 올해로 여든이시다. 젊은 시절 형부와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었다. 형부는 5년 째 되던 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으나 함께 지냈던 우의를 잊지 못하고 고향에 올 때마다 선물과 용돈까지 챙겨 주셨다.

며칠 전, 건강이 나빠졌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는 보약이라도 사 잡수라고 돈을 보내주신 터였다. 하룻밤 새 돌아가셨으니 부의금으로 넣을 수밖에. 운동을 한다고 현관을 나서는데 늘 신던 신발이 들어가질 않더란다. 왜 이러지 왜 이러지? 하고는 쓰러지신 뒤 그대로 돌아가셨다.

좀 더 사셔도 될 법한 나이라고 모두들 아쉬워했다. 당숙모는 아들만 일곱을 두었는데 여덟 번째로 오빠 혼자 남았다. 금이야 옥이야 쥐면 꺼질까 애지중지 키우셨고 손자 일곱을 잃으신 큰 할아버지는 열여섯 되던 해에 결혼을 시켰다.

초등학교만 나온 언니는 대학생 남편과 남부럽지 않은 신혼을 보냈다. 하지만 세 살이나 더 많고 예쁜 여대생과 바람이 나지 않을까 불안했단다. 60년 대 초반에 대단한 인텔리 시댁인 것도 힘들었을 건데 오빠는 경주이씨 집안의 아들답게 학벌 낮고 가난한 집안의 딸이라는 약점을 덮어주고 살았다.

언니는 늘 평생을 고마워해도 갚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고 산 것은. 얼마 후 딸이 태어나고 내리 아들 삼형제를 두었다. 열여섯 된 손자를 결혼시킨 보람은 있었으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되었으니 황당했겠다. 큰 딸하고는 17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도 또래 조카는 명랑하게 자랐다.

남들은 끼니도 어려웠던 시절 조카는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집에는 피아노에 냉장고까지 있었다. 누가 봐도 금슬 좋고 화목한 집안이다. 부잣집 아들에 머리 좋고 잘생긴 수재라도 머잖아 옛이야기가 될 테니 죽음 앞에는 속절없다.

특별히 형부가 보내주신 용돈이 부의금으로 바뀐 데 대한 충격도 적지 않다. 돈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은 레일처럼 나란히 가는 동반자였을까. 살아 있다고 산 게 아니라는 뭐 그런 느낌? 삶이 튕겨져 나가는 순간 죽음이 따라붙는 거지만, 레일은 끝없이 이어지듯 또 다른 삶이 그 전철을 밟아나가는 인생사 수레바퀴.

죽음이 곧 삶을 뒤집은 거라면 먼 곳에 있지는 않았다. 죽은 사람 묻히는 북망산도 늘 보는 앞산이었다. 진달래 꺾고 물장구치던 골짜기 또한 죽어서는 정적만 떠도는 북망산이다. 보약 사라고 보내준 돈은 환전도 되기 전에 부의금으로 들어갔다. 엄청난 재산도 유산으로 바뀔 테니 속절없다.

누구든 죽음은 태어난 자의 몫이다. 백년도 못 살면서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군다. 피할 수는 없지만 사는 법을 배우면 죽는 법도 알게 되고 사는 게 수월해진다. 살아서는 말 타고 수레 타고 둘이 셋이 함께도 가지만 마지막 그 길은 오직 혼자이다. 우리는 매일 잠을 통해서 이미 죽음을 겪었으나 막상 닥치면 불가항력이다.

느낌이 묘하다. 조문을 다녀오면 늘 수수로운데 내일이면 고향마을이 보이는 뒷산에서 한줌 흙으로 뿌려지겠지. 경주이씨 집성촌인 우리 마을에서 참 여러 가지로 유명했었다. 아들이 자꾸 죽는 바람에 마지막으로 태어난 오빠는 바위처럼 튼튼하라고 아명이 바우인 것도 온 집안에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분이 병원에서 그 밤도 못 넘기고 돌아가셨다. 누군들 죽음 앞에 무사하랴만 형제들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이라 더 각별한 느낌이었다. 끝내는 미국에서 보내 온 용돈까지 부의금으로 뒤집어 놓았으니 끝까지 유명세를 치렀다. 한동안 슬프고 울적했지만 살짝 미소가 떠오르기도 하는 기억 하나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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