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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작은 요정이 나뭇가지에 내려앉는다. 뽀얀 날개와 새까만 무늬가 파르라니 곱다. 생김을 보면 나도 그렇게 이름 지었을 거다. 숲속 요정 날개옷에는 특별 공법 별박이가 있었다면서. 댕기에도 금박을 물리면 금박댕기, 은박을 입히면 은박댕기라고 하는 것처럼.

그런 옷을 입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하얀 바탕에 물방울무늬가 별박이자나방 날개처럼 하늘하늘했다. 군살이 붙기 시작하면서 더는 입지 못했으나 하느작하느작 뽀얀 질감이 잡힐 듯하다. 별박이자나방의 새까만 무늬도 뽀얀 천 가상이에 박혔다.

닿기만 해도 두드러기 번지는 몹쓸 나방이 가는 데마다 떨잠 문양 찍힌다. 나방을 보면 한 치 앞도 모르고 날뛰는 모습이 떠오르지만 별박이자나방은 별빛처럼 영롱했다. 더듬이를 축으로 바이어스 처리된 세 개씩 다섯 개씩 별박이도 예쁘다. 훨훨 날지는 못해도 숲속 풍경과 어울린 대칭의 세계는 완벽한 데칼코마니였다.

별박이자나방을 본 저수지 뒷산도 초록을 담은 채 풍덩 내려왔다. 굽이굽이 능선과 산새들 노래도 반반씩 묻어나왔다. 물새의 하늘도 대칭으로 포개졌다. 투명한 날개는 걱정이나 별박이가, 가물가물 떠오른 연을 뜻하고 쇠고기 중에서 가장 질긴 부위라면 바람에 상하지는 않겠다.

별박이자나방은 별을 수놓는다. 나방도 아니고 나비도 아니지만, 대칭으로 숲속 하늘까지 반으로 접는다. 하도 예뻐서 나방인 줄은 뜻밖인데 가끔은 하늘에 별을 박기도 한다. 하늘이라야 뚝방의 떨기나무 정도지만 옷자락 감아쥐면 향내가 물씬 동했다. 별이 깊은 밤 뜬다면 까만 바탕에 하얀 별이다.

그에 비해 하얀 바탕에 까만 점이 박힌 별박이자나방은 거꾸로 된 느낌이다. 대낮에도 뜨고 싶어 하는 개구쟁이별이 있다면 그 문양일 거다. 하늘도 밤이면 숲속 오두막 내려오겠지. 별은 어둠 속에서 살구어지고 별박이자나방의 별은 밝음 속에서 물들었으니까.

나방으로 태어나기 전에는 자벌레로 살았다. 별이 빛나는 하늘을 일구려니 초록 이파리 든 하늘을 뜯어먹으면서 별박이 품계까지 받았다. 같은 자벌레 태생 나비에 비할 수는 없지만 쥘부채같은 날개를 자유롭게 파닥일 때는 나비의 하늘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기억의 모퉁이 돌아가면 답답할 때 찾던 오솔길과 별 헤아리던 뜨락이 있었다고 하면서.

가끔 특별한 그 이름이 생각난다. 날개에 별을 박은 것 같은 별박이와 곡자 모양 비슷해서 별박이자나방이다. 움직일 때는 징그러워도 그렇게 별박이의 꿈을 키웠다. 먼 하늘도 날개 밑에 감출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지던 그 행복을.

별박이자나방의 하루는 어디쯤일까. 볕 좋은 날은 삼삼오오 다니면서 별 뜨는 하늘 바라보겠지. 날개를 클릭하면 멧새들 노래와 시냇물 여운이 뽀얗게 살아난다. 제 몸의 별을 되비추면서 하늘 이 짝과 저쪽을 단숨에 휘갑친다. 비가 오면 이파리 파고드는 물방울 소나타를 보고 해거름에는 둥지를 찾아간다. 어스름 새벽에는 지새는달까지 볼 테니 숲속 요정 사연치고는 옹골지다.

사뿐사뿐 날갯짓을 보면 나비 같은데 격은 약간 떨어진다. 선천적인 장애가 있는 것처럼 그늘에서 띄엄띄엄 옮겨 다니지만 날개를 들치면 숲속 푸른 내음과 건너편의 뫼 울림까지 들었다. 나비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밤으로는 별이 박힌 하늘 바라보겠지. 나비도 나방도 아닌 것처럼 그들의 하늘도 푸르거나 어둡지 않고 반투명 공간이다.

산등성이 밑단을 공그르다가 별빛 같은 눈 깜박이더니 밤이면 은하수 별로 반짝이려나· 날개는 작아도 화려한 나비와 어두운 불나방의 세계를 펼친다. 숲속 골짜기에서도 꿈의 반경 넓히면서 이상은 하늘 높이 두었다. 한낱 곤충이고 나방일 뿐인데 수많은 별 땀땀 새겼다. 우리도 등불에 덤비는 불나방 같지만 않으면 별박이자나방처럼 충분히 예쁘다. 숲속 그늘에 살지만 거기서도 별을 보는 별박이자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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