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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4.14 13:50:31
  • 최종수정2024.04.14 13:50:31

이정희

수필가

5월도 스무날께 옛집을 찾아왔다. 뒤란을 돌아가자 누에를 치던 헛간 방이 나왔다. 봄이 되면 어머니는 뽕잎을 따오셨다. 뽕잎을 갉아 먹는 소리가 와스락대면 집짓기 시작이다. 뽕나무가 앙상해질 즈음에는 고치가 쌓이고 어머니는 끓는 솥에 붓고 물레를 돌리셨다.

뽀얀 누에고치가 선하다. 흙장난을 하던 나는 연신 받아먹었다. 누에는 실을 토해서 집을 지었건만 어머니는 허물어서 명주실을 잣는다. 끓는 물에 무너지던 뽀얀 그 집은 창자에서 뽑아낸 실로 지은 거란다.

제 몸을 줄이고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들다니 그렇게 짓느라 오장은 뒤틀리고 입이 다 헐었다. 그런 집인데도 열흘밖에 살지 못한다. 고치에서 내뿜는 실은 1,000m가량인데 어찌 다 꺼냈을까. 목숨과 맞바꾼 집이다. 시퍼런 뽕잎을 먹고도 야들야들 누에고치 집 지은 속내를 알 듯하다.

뽕나무 밑으로 달팽이가 굴러다닌다. 속은 비고 껍질만 남은 게 집과 운명을 같이 했다. 현대식 나선형에 안팎이 따로 없다. 거실이니 화장실도 필요치 않을 전천후 공간에 제 몸 하나 들어가면 끝나는 이동식 원룸이다.

안테나 같은 뿔은 휴대전화에 견줄만하고 태풍이 불작시면 나뭇잎에 숨는다. 구멍 뚫린 이파리에서 낮달을 훔쳐보기도 하지만 깨질까 봐 걱정스럽다. 땅을 기던 몸 자체가 보금자리였으니 달팽이의 집은 끝까지 멍에였다. 지금 껍질만 보고도 집이라고 생각될 정도니 죽어서도 집을 떠날 수 없는 숙명이 그려진다.

샘 옆에 잎이 다 떨어진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생전의 어머니는 그 나뭇가지를 꺾어 회초리를 만들었으나 엄포만 놓았을 뿐 매를 들지는 않으셨다. 앙상한 가지에 거미줄이 있고 바싹 마른 거미가 매달렸다. 불시착한 곤충은 수없이 죽어간다. 대부분의 집이 온전한 자연의 산물이었다면 까만 벌레의 그것은 미끼였다.

입구는 있어도 출구가 없다. 집과는 동떨어진 의미도 떠오른다. 집에 갇힌 것 같은 모습을 보면 침입자는 없었다.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한 통제도 필요한데 피신처로만 생각한다. 들어갔다 하면 끝장인 맹점에 걸리듯 우리는 모두 살던 집에서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 또한 평생을 몸담아 온 집과 고락을 같이했다. 그 집에서 행복의 물레를 돌리고 소망의 베틀에서 무명과 빛깔 고운 비단천을 짜냈다. 그렇게 돌아가신 지 삼십년 남짓인데 어제 일처럼 선하다.

울타리 너머로 강줄기가 보였다. 꾀 벗은 아이들이 두꺼비집을 짓는다. 소나기가 지나는 팔월 오동잎보다 작은 손으로 모래를 다져 쌓는다. 벽을 다듬고 지붕을 올리면 집 한 채가 완성되었다. 다음에는 손등을 약간 쳐들어 지었다. 좀 전의 집은 천장이 너무 낮았다. 손등을 쳐들어 지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라고 하면서.

예쁘고 튼튼한 집을 짓겠다고 서두르면 구름이 몰려왔다. 풀잎이 설렁대면 금방 소나기가 뿌렸고 두꺼비집에도 물이 들었다. 몇 채는 무너지고 갓 지은 집도 조금씩 허물어졌다. 장대비도 아랑곳없이 모래톱에서 망연히 바라보던 기억이 한 컷 슬라이드로 지나간다.

해거름이면 물에 휩쓸려간 집들이 떠올랐다. 두꺼비집과는 비교도 안 될, 달천평야가 모두 잠긴 물난리였다. 강가에 살고 있던 농민들은 집을 잃고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항아리가 떠내려가고 가축이 떠내려갔다. 남은 살림살이를 꺼내 말리느라 법석인데 젊은 엄마가, 갓난쟁이를 포대기에 안고 마당을 서성이기도 했다. 오래전 충주시내를 강타했던 임자년 홍수 얘기가 물에 잠긴 두꺼비집을 보는 듯 썰렁했다.

더위가 꺾이면 앞산 자락은 눈에 띄게 차분해온다. 개울도 장마철의 와글와글한 것 대신 수정같이 맑아진다. 얼마 후 상류에서 떠내려온 나무둥치가 보이고 주춤주춤 버섯이 올라왔다. 집도 같고 우산도 같은 버섯골에서 벌레가 바글바글 비를 긋는다. 썩은 아랫도리에 물이 들면 먹구름이 오줌 갈기 같은 빗물을 내쏘곤 했다.

초겨울에는 까치집도 팔 부만치 보였다. 떡시루마냥 들어앉아 뗏목으로 떠가고 하늘로 큰다. 이만 개의 나뭇가지가 들어간다지? 큼직한 가지 몇 개보다 작은 나뭇가지를 겹쳐 댄 게 튼튼하단다. 집은 집이어도 자연 속에 들어앉은 게, 아늑한 휴식 공간 그대로다. 그해 겨울이 추울 것 같으면 낮게 짓고 푹할 것 같으면 높은 곳에 터를 잡는다. 한낱 미물인데도 날씨를 헤아리면서 짓는다.

이름부터가 정겨웠던 모종의 까치집. 다만 한 해 살 집인데도 노심초사 신경을 쓴다. 집터는 또 푸른 나뭇가지 틈이었으니 더욱 신비스럽다. 이상하게 작고 아담한 집이 좋더라니. 어머니가 살다 가신 자그마한 보금자리가 오롯이 자리 잡는다. 나도 어느새 정신적인 휴식 공간을 생각하게 된 걸까. 자분자분 집 짓는 이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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