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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나비다. 유채꽃 겨드랑이마다 한 마리 두 마리 내려앉는 배추흰나비. 엄마 손 잡고 밭둑에 나와 서성대는 꼬맹이 머리핀도 나비문양이다. 알록달록 헝겊을 마름질해서 나비 문양으로 묶고 핀을 질러 넣었다. 샛노란 꽃도 예쁜데 투명한 나비와 풀리지 않게 묶은 머리핀을 보니 전통식 매듭공예가 떠오른다. 누군지 모르지만 아득히 옛날 나비를 보고 특유의 매듭공예를 창안한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단순한 상상인데도 풋풋한 느낌이다.

나 어릴 적 어른들은 하루나라고 불렀다. 푸성귀가 흔치 않았던 시절 반짝 김치 겉절이로 자주 먹었다. 나물로도 무치고 된장국으로 끓여 먹었다. 뻣뻣하게 쇠면 다보록 꽃이 피고 나비가 쌍쌍 내려앉는다. 제주도와 아랫녘이 아니면 잘 심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쩌다 외딴 집 뜰에서 한 포기가 꽃을 피우고 거기 찾아든 나비와 철부지의 머리핀을 보고 나비매듭 문양을 상상하고 있다.

나비매듭은 전통매듭 중에서도 독특한 방식이다. 노리개와 벽걸이, 주머니, 끈, 등에 두루 쓰인다. 보통 바로나비(암나비)와 거꾸로나비(수나비)가 있다. 날개가 위로 향해 있으면 바로나비, 아래로 향한 것은 거꾸로나비라고 부른다. 바로나비는 ∞자 문양이고 여덟八자를 거꾸로 세운 거꾸로나비는 훨씬 복잡하다. 전통매듭의 수준을 따질 때 보통 '거꾸로나비'를 맺을 줄 아느냐고 할 만치 까다로워 지금까지 특별한 비법으로 알려져 있다.

복잡하게 고를 내고 매듭을 지으면서 인생 또한 우여곡절이라고 했겠지. 한 가닥일 때와는 달리 두 번 세 번 꼬고 맺어 놓은 게 예쁘고 볼품이 있다. 인생도 복잡다단 얽힌 매듭을 한 올 한 올 풀어내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나비문양이 알려진 것은 특유의 '八 자' 모양 때문일 테니까.

'八 자' 하면 험난한 삶이 떠오르고 나비처럼 섬약했던 우리는 그 속에서 의지를 키운다. 나비가 소풍을 나온 것도 봄이었으나 꽃샘에 황사에 어수선할 때가 더 많다. 날개를 다치고 혼비백산 돌아가기도 했겠다. 우리도 희비애락이 얽히면서 어기찬 인생으로 바뀐다. 매듭을 짓다 보면 풀어야 될 때도 있다. 아니면 고를 내고 묶는 등 복잡하지만 그럴 때마다 삶을 돌아보게 될 거다.

다시금 날아드는 배추흰나비. 어릴 적 흰나비를 보면 엄마가 죽는다고 했는데 싶어 더럭 겁이 났다. 그래 저만치 보고도 "아니야 아니야. 나는 노랑나비만 보았어 흰나비는 절대 아니었거든?"라고 애써 체머리를 흔들었는데 이제 부정은커녕 전통 매듭의 신비와 함께 곡절 많은 삶을 연상한다. 세월도 많이 흘렀다는 뜻이었으리.

눈감으면 멀리 뜨물같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기지개 켜는 봄 뒤로 나비의 하늘까지 푸르다. 꽃을 찾아 향기 찾아 오를 때마다 날개도 한껏 여물었다. 그 날개도 예쁘지만 더 고운 날개는 하늘에 달아줄 때였다. 날갯짓만큼 하늘도 점점 푸르러질 테지? 한창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는데 먹구름이 몰려온다. 풍경이 돌연 험악해지고 나비도 잠깐 새 사라졌다.

꽃을 보고 좋아라 나왔다가 꽃샘에 허둥지둥 얼마나 놀랐을까. 아침에는 따스했다가 오후가 되면 늘 그 모양이지만 그럴 때마다 실팍해지던 날개돋이의 아픔을 본다. 꽃잎만치나 화사한 날개로 꽃샘을 따돌리고 보리누름 추위까지 너끈히 물리칠 거다. 그 하늘은 또 푸르지만은 않고 이따금 먹장구름이듯 인생 역시 꽃 피고 새우는 들판이 전부는 아니었다.

갑자기 썰렁하다. 깜빡, 날씨에 속아 나비처럼 하늘하늘 얇은 옷을 입고 나온 탓이다. 인생도 따스하지만은 않았다. 나비 핀 꽂고 나온 꼬맹이도 푸른 벌판과 유채꽃 피는 텃밭이 세상 전부가 아닌 줄 깨닫게 될 테지.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을 보면 유감이지만 나비의 하늘도 푸른 것만은 아니었다. 유채꽃 내려앉을 때는 종잇장 같아도 그 날개로 세상의 봄을 수놓는 나비처럼 꿋꿋하게 자랄 어린이를 상상해 본다. 꽃노래 여울지는 봄 끝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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