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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얼마 전 모 기관에서 손님이 뜸한 식당과 붐비는 식당의 차이점을 분석 발표했다. 한산한 식당은 대부분 '신발 분실 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있고 잘 되는 식당은 '신발을 분실하지 않도록 주의 하십시오'라는 문구가 있었다는 거다. 뉘앙스 문제였던 것.

종종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럴 때마다 책임을 질 수 없으니 고심 끝에 써 붙인 안내문이다. 같은 뜻이지만 하나는 만약의 경우 책임을 지지 않을 거라는 뜻이고 또 하나는 분실되는 일이 많으니 조심해 줄 것을 부탁하는 말이다. 식당을 다니면서 두 가지 문구를 수차례 보았으나 성공과 실패의 조건으로 분석할 줄이야.

상황이 그려진다. 맛있게 밥 잘 먹고 나가려는데 신발이 없어졌다. 황당할 수밖에. 누군가, 메이커 신발을 신고 온 손님이 식사할 동안 욕심이 나서 바꿔 신었을 거다. 당연히 실랑이가 벌어졌으리. 그런 일이 한 두 번은 아니겠지만 책임이 없다고 강력 부인하는 것은 좀 그렇다. 경위야 어쨌든 식당에서 생긴 일인데 전혀 몰라라 하는 것은 글쎄? 변상은 어려워도 도덕적 책임은 있지 않을까. 같은 말이어도 아 다르고 어 달랐던 것을.

한두 번 아니게 옥신각신하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써 붙였겠지. 그렇더라도 '신발을 분실하지 않도록 주의 하십시오' 라며 도덕적 책임은 지겠다는 거라야 맞다. 화가 나서 펄펄 뛰는 손님에게 "책임지지 않는다는 문구 보셨잖습니까"라고만 하는 주인과 어쨌든 죄송하다는 주인이 있다면 어느 쪽으로 끌릴지 상상이 간다. 책임질 수 없다고는 했어도 송구스러운 자세로 나오면 '그래, 주인 잘못일 수는 없지' 라고 마음을 바꿀 수 있다.

지인 중 한 사람도 랜드로바 구두를 신고 갔다가 잃어버렸다. 그러나 몇 번 실랑이 끝에 흐지부지되었다고 한다. 주인의 잘못은 없겠다 싶어 그냥 나온 거지만 깐깐한 손님과 사단이 났을 것이다. 문제의 손님은 손해를 따지기보다 붙여 둔 문구만 앞세워 전혀 몰라라하는 것이 못마땅했겠다. 탐을 내서 바꿔 신을 정도면 꽤나 고급일 테고 물어 주기는 힘들어도 난처한 입장을 밝히면 수긍했을 것이다.

친구와 함께 외식을 하던 날이었다. 자판기 옆에 '커피와 음료는 셀프입니다' 라는 문구가 있다. 딱히 그게 아니어도 식사가 끝나면 후식으로 으레 커피를 뽑아와 먹는데 그 날 따라 주인 여자가 쟁반에 직접 담아 왔다. 바쁜데 뭘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더니, 지금은 한 숨 돌릴 시간이라면서 웃는다.

실제 홀 안의 손님은 거의 빠진 뒤였다. 종업원들은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고 비로소 커피나마 담아 올 수 있었던 거다. 바쁠 때는 몰라도 한갓질 때 못 본 체하는 건 손님 입장에서도 거북하다. 직접 챙겨 먹을지언정 미처 돌아보지 못한 입장을 해명한다면 누군들 이해하지 않을까.

성공적 운영 요건이라면 맛있는 음식과 쾌적한 실내 공간 등 여러 가지였으나 가끔은 사소한 일 하나가 영향을 끼친다. 단지 통계자료일 뿐 흔한 신발장과 자판기의 문구가 무에 차질을 줄까마는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오는 식당에서 불쾌감을 조성하는 건 맛난 음식을 제공해야 되는 도덕성에도 어긋난다.

셀프라고 공공연 선포한 것과는 달리 쟁반에 담아 온 것은 분명 남다르다. 생각하니 늘 손님으로 붐볐다. 주인과 종업원 모두 싹싹한 건 물론 음식도 맛깔스럽다. 손님의 입장을 헤아리며 더 좋은 식재료 구입과 합리적인 조리법 개선으로 손님의 기호를 맞춰주면서 최선을 다할 것으로 본다.

최선을 다한들 불경기에는 속수무책이나 그 외에는 성실하게 일한 만큼의 결과가 나온다. 그렇지 못한 식당의 타박보다는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헤아릴 동안 뜻한 바를 이루면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이 되는 것을 말하고 싶다. 성공도 실패도 자기 품성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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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기업 돋보기 5.장부식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

[충북일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 국내 시장에 '콜라겐'이라는 이름 조차 생소하던 시절 장부식(60)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는 콜라겐에 푹 빠져버렸다. 장 대표가 처음 콜라겐을 접하게 된 건 첫 직장이었던 경기화학의 신사업 파견을 통해서였다. 국내에 생소한 사업분야였던 만큼 일본의 선진기업에 방문하게 된 장 대표는 콜라겐 제조과정을 보고 '푹 빠져버렸다'고 이야기한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에게 해당 분야의 첨단 기술이자 생명공학이 접목된 콜라겐 기술은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분야였다. 회사에 기술 혁신을 위한 보고서를 일주일에 5건 이상 작성할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던 장 대표는 "당시 선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 기업으로 선진 견학을 갔다. 정작 기술 유출을 우려해 공장 견학만 하루에 한 번 시켜주고 일본어로만 이야기하니 잘 알아듣기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공장 견학 때 눈으로 감각적인 치수로 재고 기억해 화장실에 앉아서 그 기억을 다시 복기했다"며 "나갈 때 짐 검사로 뺏길까봐 원문을 모두 쪼개서 가져왔다"고 회상했다. 어렵게 가져온 만큼 성과는 성공적이었다. 견학 다녀온 지 2~3개월만에 기존 한 달 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