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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한 사람이 사형 선고를 받고 드디어 집행하는 날이 됐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고 하자 금덩이를 한 개 꺼냈다. "이것을 심으면 금열매가 달리는 보배입니다. 하지만 죄 지은 사람일 때는 달리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죄인이니 임금님께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임금은 자기가 심어 봤자 열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옆에 있는 벼슬아치에게 "나는 금이 많으니까 자네가 심어서 따게." 라고 했다.

그러자 "저도 많습니다."라며 동료를 보고 "자네가 심게." 라고 거부했다. 다음 다음 사람들 역시 사양했다. 금은 결국 임금에게 돌아왔고 이 사람을 사형에 처하기에는 자신을 비롯한 모두가 난처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임금은 "너는 참 지혜롭구나. 죄는 지었지만 그 때문에 방면하노라."라고 하면서 그를 풀어 줬다. 모두들 죄의 문제에서 자유롭기는 힘들었던 것일까.

사실이 그렇더라도 권력을 내세워 감행할 수도 있었다. 우매하지 않은 만큼 풀어주면서 난처한 지경을 모면했다. 하지만 고작 사형수에게 당했다. 찜찜하면서도 심리를 꿰뚫어 볼 줄 안다고 혀를 내둘렀을까.

사형까지 언도받은 내막은 모르겠으나 범죄심리학을 정립해도 되겠다. 그의 제안대로라면 이래저래 풀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막상 받을지언정 그 조건으로 살려줄 수밖에 없고 받지 않아도 자기 양심 때문에 풀어줘야만 되는 복선을 깔아두었던 거다.

한낱 금덩이 테스트에서 쩔쩔매는 사람들을 보면서 죄도 결국 오십 백 보 아니겠느냐고 쾌재를 올렸으리. 뇌물인데도 받을 생각이 없게 만들었다. 금덩이 어쩌구 할 때부터 허튼 수작이냐고 출처를 캐물을 수 있건만 은근 제 발이 저렸던 것일까.

정당한 소유라 해도 사형수의 재산이라고 압류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어찌 금덩이가 생겼는지 몰라. 동화가 아니면 가당치 않으나 목숨을 흥정하면서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었다. 앞으로의 추이를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았다.

사형을 받고 죽을 목숨이었건만 거기 모인 기라성 같은 인물들은 그로써 잠깐 지난 날을 돌아보기도 했으리. 한낱 사형수의 말장난에 휘말렸던 거다. 그냥 금덩이였으면 서로들 차지하려고 야단이었을 텐데 죄의 문제를 들먹이면서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문맥상으로 보면 사형을 면하고 금덩이까지 가져가서 잘 살았을 테니 뛰어난 전략이다.

금덩이라고 하니까 열매는 나중이고 냉큼 받아서 심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럴 엄두는 내지 못했다. 재물을 보면 눈이 먼다지만 아무리 탐욕스러운 사람도 자기양심까지는 속일 수 없다. 어릴 적 학용품을 살 때는 용돈을 올려서 말한 일도 있었다. 딱히 죄는 짓지 않았다 해도 본의 아닌 거짓말 한 번 없는 사람 또한 있을까?

멀쩡한 금덩이를 사양하는 모습은 그래서 더 인간적이었다. 사형을 언도 받을 정도로 죄에 베테랑인 사형수는 아무도 선뜻 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정확히 꿰뚫었다. 범인을 추적하는 프로 파일러 못지않을 정도로.

들키지 않아서 그렇지 임금이든 누구든 자기만 아는 소소한 잘못 하나 없다면 거짓말이다. 죄라고 할 것도 아니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 절대 권력을 가진 임금조차도 원초적인 문제 앞에서는 망설이고 주저한다. 자기가 심었다가는 달리지 않을 거라고 미룬 양심 때문에 그나마도 중압감에서 벗어나게 됐다.

우연히 읽은 동화에서 많은 것을 보았다. 죄가 있는 사람이 심을 때는 열매가 달리지 않는다는 착상이 기발하다. 금열매를 받고 풀어주거나 너도 나도 심겠다고 하면 무의미하게 끝났을 내용인데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하면서 명쾌하게 결말이 났다. 죄라고 하니 나 자신도 떳떳할 게 없으나 죄의식 때문에 선뜻 받지 못하는 것만도 약간은 도덕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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