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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2.03.13 13:50:05
  • 최종수정2022.03.13 13:50:05

이정희

수필가

날씨가 풀렸다. 3월에 접어든 탓인지 별반 춥지가 않다. 청미천 기슭의 물오리도 숫자가 훨씬 줄었다. 춥기만 하면 녀석들은 시끌벅적 모여서 난리도 아니었다. 닷새 전 늦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떼를 지어 다녔다. 그러던 것이 이제 한 패는 고향으로 가버린 듯 조용하다. 따스해지기만 하면 더 추운 지방으로 거처를 옮기는 것이리라.

한겨울 다리께를 지날 때는 귀 끝이 아리도록 바람이 차가웠다. 무리를 지어 헤엄치는 물오리를 보면 얼핏 서른 마리는 될까. 얼음은 희다 못해 푸른 기(氣)까지 돌고 불시착한 녀석들이 자맥질에 바쁘다. 보기만 해도 오싹한 풍경인데 녀석들은 정작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다. 갈밭에도 여남은 마리가 정담이나 나누듯 옹기종기 모였다.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음이 잔뜩 언 개울에서 참 대단한 녀석들이었다.

지난 초겨울에 부산의 친구가 놀러 왔었다. 시베리아에 온 것 같다며 얼마나 추워하는지 웃음이 절로 났다. 겨울이라 해도 그 날은 영하 3도 안팎이었다. 그래 뭐 이까짓 추위를 갖고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부산은 아직 영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고 한다. 자맥질하는 물오리를 보고 얼결에 몸서리치던 나 역시 그런 기분이었거늘.

물오리가 살던 고향에 비하면 여기 추위는 기실 대단치는 않다. 어쩌면 지금 이 곳의 날씨는 그들의 고향에서는 가을로 볼 수도 있겠다.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체질일 수도 있겠지만 적당한 날씨를 찾아다니는 철새가 자못 새로운 느낌이었던 것.

추위를 피해 오는 겨울철새와는 달리 제비 등의 여름 철새도 있다. 늦가을이면 전기줄 또는 빨랫줄에서 작별 인사나 하듯 떼 지어 지저귀던 풍경이 선하다. 똑같이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철새들의 생태는 그렇게 대조적이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따스한 곳만 찾아다니는 제비로서는 개울에서 천렵이나 하듯 소일하는 물오리 세계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나로서는 또 제비가 살던 강남의 여름은 얼마나 더운지 가늠이 어려울 테니 묘하다.

여름철새인 제비는 너무 더워서 떠나왔을 테고 물오리는 따스한 곳을 찾아왔으나 적응하기 좋은 날씨를 찾아 온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물오리 같은 경우 상상도 못할 강추위 속에서 단련되다 보니 봄으로 가는 지금 2월은 그저 쌀쌀한 정도였겠지. 그나마 거기서의 한겨울은 강심장인 그들에게도 너무 추워서 남하해 온 것이지만 우리보다 이골이 난 녀석임에는 틀림없다.

물오리도 내처 살면 고향에 갈 때마다 내 친구마냥 무지하게 춥다고 호들갑을 떨지 않을까. 시련 또한 더 큰 어려움을 생각하면 지금 문제는 간단해질 수 있다. 상상도 못할 추위를 견뎌온 이력 때문에 한겨울 냇가에서의 자맥질을 펼치던 물오리를 보면 춥고 더운 것도 견디기 나름이다. 나 역시 추위를 타는 체질이었지만 영하 3도 안팎의 날씨에 시베리아를 들먹이던 친구를 보고 잠깐 실소했던 것처럼.

다시금 물오리를 본다. 바람은 차가워도 동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정겹다. 앞으로도 추위는 몇 번 있겠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의미를 체득한 느낌이다. 지금 여건은 좋지 않아도 더 나쁜 여건이 닥칠 수 있다. 주변의 인물을 누군가와 견주는 것은 상처가 될 수 있으나 여건을 따질 때는 필요하다. 부산의 친구는 나보다 더 추위에 약해서 장갑까지 낀 채 동동거렸으나 물오리 또한 나를 보면 혀를 차게 되는 것처럼 그렇게.

불만스러운 차원에서 비교할 때는 열등감을 조성하지만 자기보다 불행한 사람들과의 하향 비교는 행운이 될 수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할 경우 더 나은 인생의 초석이 된다. 얼핏 속임수 같지만 더 많이 가진 사람들과의 상향비교보다야 얼마나 창조적인가. 힘들수록 내려다보면 답이 나온다. 세상에는 나보다 못한 여건 속에서 사는 사람이 뜻밖에 많다. 우월감보다는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행복의 탑을 쌓기 위한 과정으로 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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