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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모처럼 먹은 올갱이 해장국은 맛이 특이했다. 된장국에 든 한 줌 올갱이와 시래기도 맛깔스럽다. 쌀랑한 날씨에 따스한 국이 한결 구수하다.

논이나 하천에 사는 민물고둥을 내가 사는 충청도에서는 올갱이라고 불렀다. 5월 중순경이면 서울로 유학 간 오빠가 내려오고 우리 딸들을 올갱이를 잡으러 강으로 갔다. 동구를 지나 강줄기가 보이면 그때부터 달음박질이다. 바지를 걷고 들어가 다닥다닥한 것은 훑어 내고 듬성한 것은 하나하나 집어낸다.

정강이가 시린 줄도 몰랐다. 주전자 가득 채우다 보면 해거름이고 그제야 땅거미 지는 강가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벌써 된장을 풀어 끓이고 계셨다. 언니는 올갱이를 쏟아서 박박 씻어 건졌다. 얼마 후 보면 약속이나 한 듯 혀를 빼물었다. 그럴 때 끓는 물에 집어넣어야 쏙쏙 잘 빠지는데 미처 나오기도 전에 넣으면 자라목처럼 들어가기 일쑤다.

어머니가 조래미로 건져 놓으면 우리는 바늘로 까먹었다. 하나씩 꺼내서 먹다 보면 생김도 가지각색이다. 기름한 건 누가 봐도 높은음자리다. 가끔 통통하니 몸체가 짧은 녀석들이 나오고 우리는 배틀 올갱이라고 불렀다. 그것이 천연 낮은음자리였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소리를 끌어내야 한다고 하듯 혀가 쑥 나와 있다.

교회에서 합창을 연습할 때는 파트 별로 부른다. 낮은음을 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해서 얼결에 맡은 적이 있는데, 멀쩡히 잘 부르다가도 어느 순간 높은음을 따라가는 바람에 포기했었다. 똑같이 삶아내도 높은음자리 기름한 녀석들은 잘 빠지는데 낮은음 같은 배틀 올갱이는 번번이 속을 썩였다.

바람에 일렁이던 물살은 천연 악보였지. 바위에 질펀히 앉아 혀를 내미는 게 발성 연습을 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바리톤과 알토 음을 내기가 어려운 것처럼 끌어올리는 시점을 파악하지 못해서 노래가 어려워진다. 낮은음은 물론 높은 음까지 어울려야 되는 것 때문에 올갱이조차 두 가지 유형이었나 보다.

높은 음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플루트나 바이올린에 더 끌렸는데, 지금은 더블베이스와 첼로 소리도 괜찮다. 높은음 악기의 가끔 쇳소리가 나는 약점도 낮은 음역과 어울리면서 전혀 딴판으로 바뀌는 낮은음의 효과를 본 것이다.

특별히 바이올린 중에 제2 바이올린이 있고 낮은음 담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이올린은 고음 악기지만 저음이 받쳐줄 때 비로소 특유의 소리가 난다. 지휘자 '번스타인'이 제2 바이올린 주자를 찾기 힘들다고 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바이올린 하면 높은음을 생각하게 되듯 연주자들 역시 제1 바이올린에만 치중하는가 보다.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바이올린의 높은음도 제2 바이올린의 낮게 드리워진 배경음악 때문에 훨씬 돋보였을까.

낮은음은 바닥을 지향한다. 올갱이가 사는 강줄기도 자꾸만 내려갈 테니 필경은 낮은음 담당이다. 내려간 만큼 높아지는 걸 아는지 올라가려고 버둥대지 않는다. 낮은음 또는 높은 음만 있어도 안 되지만 낮은음 내기가 특히 어려웠음을 숙지하는 것이다.

올갱이를 잡을 때마다 강물은 풀다듬이나 한 듯 매끈했다. 눈감으면 고향은 저 아래였다는 메시지가 들렸지. 발원지가 높은 것도 내려가는 속성 때문이다. 낮추면 모든 게 순조로운데 높이만 추구하다가 추락을 동반한다. '깊은 물이 소리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낮은 바닥인가로 결정된다. 소망은 높은 곳에 있었다. 다이아몬드와 금 등의 광물질은 훨씬 깊이 묻히고 희귀한 어류도 깊은 물에 산다.

물은 높이를 묻지 않는다. 처음 한 방울 물이었던 게 개울로 강으로 내려가면서 바다를 이루었다. 높이는 안중에도 없이 바닥으로 간 것 치고는 엄청난 결과다. 아무리 내려가도 무리가 없고 가장 낮은 자가 높아진다면 숙이는 건 비굴한 게 아니다. 낮은음자리의 최대 효과는 내려간 만큼 올라가는 무한의 깊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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