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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무너진 지붕 위로 낙엽이 떨어진다. 깨진 담벼락에도 가랑잎이 쌓였다. 축축한 기왓장은 금방이라도 이끼가 번질 듯하다. 낙엽조차도 아름다운 거기, 스카프를 매고 바바리코트 깃을 세운 채 걸어가는 가을 나그네가 보인다.

친구에게서 받은 액자의 풍경이다. 우연히 만난 뒤로 각별하게 지낸다. 취향이 비슷한 까닭이리라. 엊그제도 모처럼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벽에 걸린 압화 한 점이 눈에 띄었다. 안개꽃으로 배경을 잡은 뒤 패랭이꽃과 들국화로 장식을 해서 말렸다.

옹기종기 늘어선 조약돌도 특별한 뉘앙스를 풍긴다. 산에서 혹은 강가에 굴러다니던 것을 가져 와서 장식했겠지. 주변을 오가며 찾아낸 자연의 소품이라 그런지 더 인상적이었다. 백화점 같은 데서 사는 건 내키지 않고 철철이 나오는 꽃과 약초가 더 좋단다. 들국화를 쪄서 말리기도 한다니, 청주 시내에 살면서도 누릴 수 있는 아취가 자못 돋보인다.

문득"선생님, 차 하잔 하세요"라는 목소리가 가을 물살처럼 해맑다. 질박한 옹기접시에 국화차와 요플레를 담아 내왔다. 하안 거품 위에 잣과 호두까지 고명으로 띄웠다. 투명한 다기에 찻물을 따르면서, 유주를 말렸다가 우려낸 거라고 한다.

거실 모퉁이에도 도자기 꽃병 하나가 이채롭다. 거기 웃고 있는 생화 역시 수수한 구절초와 들국화가 전부다. 예쁘지는 않아도 조촐한 꽃에서 소박하게 빛나는 삶을 보는 것 같다. 질그릇 항아리며 소반 역시 은은한 품위가 돋보인다. 비싸거나 화려한 건 아닌데도 고급스러운 안목을 드러낸다.

특이한 것은 직접 그려서 표구해 둔 액자다. 어떤 그림은 수많은 나무토막을 그렸다. 필연 어느 집 뒷담에 쌓여 있던 장작을 캔버스에 담았을 것이다. 군데군데 변색된 옹이는, 따사로운 볕과 바람을 쬐고 자라면서도 가끔은 태풍과 눈보라에 시달려 온 나무의 연륜 그대로였다.

수많은 나이테를 일일이 다르게 표현한 것도 안주인의 품격이었을까. 구석구석 오밀조밀한 소품을 보면 집안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바지런한 품성이 엿보인다. 유일하게 사치라고 해 봤자 좋아하는 글 쓰면서 그림을 그리는 게 전부인 것은 지금 본 대로다. 책을 내고 그림전시를 할 때마다 깨알 같은 행복을 느꼈을 테지.

느낌이 수수롭다. 그릇이든 장식품이든 어느 것 하나도 예사로운 게 없다. 생활은 소박해도 이념은 높일 수 있다. 오랜 지기를 만난 기분이었으나 불과 이태 전이다. 그 즈음 출판사에서 작품 교정을 의뢰받았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어색한 문장과 단락을 수정보완하면서 일주일 동안 함께 지낸 게 전부다.

보통은 출판이 끝나면 잊어버릴 사람들이었으나 그 때는 왠지 모를 친근감이 들었다. 처음 발간하는 만큼 부족할 거라면서 조심스러운 말투였었지. 뛰어난 작품이 많아서 수작이 될 거라 해도 거듭 사양한다. 실력도 실력이려니와 겸손한 품성이다.

이후 교정이 끝나고 책이 나온 지금도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마음까지 따스해진다. 점심을 먹고 나설 때는 날씨까지 화창했다. 골목을 벗어나자마자 탁 트인 들판이다. 군청색 하늘 뒤로 억새가 날리는가 하면 가랑잎 떨어지는 풍경도 목가적이었다. 고샅길의 감나무 또한 붉은 감을 잔뜩 달았다. 가을 후미에서 짧은 만남이지만 진솔한 분위기는 닮고 싶다. 풍성한 계절 가을에도 때로는 조락의 이미지가 겹쳐 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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