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이정희

수필가

밭둑에 벚나무 한 그루가 있다. 흐드러진 꽃망울이 분홍 차일을 쳐놓은 듯 눈부시다. 꽃이 지고 나면 파랗게 잎이 돋고 그늘도 넓어질 게다. 양지 바른 곳에 핀 벚꽃은 그 새 떨어지는 듯 눈송이처럼 흩날린다.

메마른 자갈밭에서 흐드러진 꽃잎과 튼실한 가지가 탐스럽다. 귀 기울이면 물을 끌어올려 나무를 키우는 뿌리의 기척이 들린다. 겨울을 난 뒤 봄물을 길어 올리면서 꽃 피울 준비를 해 왔다. 바람과 꽃샘추위를 견딜 동안 뿌리는 더욱 튼튼해졌다. 꽃과 열매는 물론 그늘까지 좋게 하려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 봄에 벚꽃이 그처럼 예쁜 것은 보이지 않는 데서도 보이는 이상의 역할을 하는 뿌리 때문이리라.

뽐내는 꽃과 열매 앞에서도 자기가 했다고 가로막지 않는다. 오히려 더 고운 꽃과 열매가 달리도록 도와줄 것만 생각한다. 흙을 뒤집어쓴 채 일하기 때문에 모습은 또 얼마나 흉한지 모른다. 탐스러운 꽃과 열매도 뿌리가 없으면 금방 시들 텐데 흉이나 잡히지 않으면 다행이라 얼결에 맡은 일이 아니면 자처하는 사람이 드물다.

중요한 일은 혼자 하면서도 정작 뽐내지는 않았으니 그럴 거면 애초 땅속으로 뻗지도 않았다. 가끔 죽은 것처럼 보이는 나무에 싹이 돋기도 하는데 당연한 일로 뿌리 때문이다. 뿌리만 있으면 언젠가는 싹이 돋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꽃이나 열매 또는 최소한 잎이나 줄기 역할을 꿈꾸지만 알아주지 않고 봐 주지 않아도 묵묵히 감수하는 역할이 어기차다.

어린 나무라도 강한 게 있고 커다란 나무라도 약한 게 있다. 뿌리가 강하면 발육이 부진해도 문제될 게 없다. 반면 허우대가 멀쩡해도 뿌리가 약할 때는 불안하다. 꽃은 예쁘고 열매는 탐스럽지만 뿌리가 없고서는 아무리 화려한 꽃과 풍성한 열매도 소용없게 된다. 꽃과 열매에 집착한 나머지 뿌리를 등한시하면 그야말로 무익한 일이었으리.

이따금 나무처럼 살고 싶어지는 배경이다. 가물 때 잎이나 꽃은 그냥 말라버리지만 뿌리는 타개책을 강구한다. 밭둑의 벚나무는 척박한 땅에서 열악한 조건이었으나 가물수록 뿌리는 더 멀리 뻗어갈 테니 걱정은 덜었다.

뿌리라고 힘든 게 없었을까. 가끔은 꽃이나 열매처럼 남의 눈에 띄기를 원했을 거다. 따스한 볕도 쬐고 싱그러운 바람을 쐬고도 싶었겠지만 땅 위로 뻗어나가는 경거망동은 저지르지 않았다. 잎이나 줄기가 아닌 뿌리가, 땅 속이 아닌 하늘을 향해 뻗는다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기 전에 나무는 벌써 죽어버릴 것이다.

어려움과 시련도 행복이 꽃피는 나무의 뿌리라고 보면 어떨까. 불행과 어려움으로 뿌리심을 높이고 나면 행복의 꽃은 훨씬 예쁘고 탐스럽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우리 또한 삶의 뿌리를 넓힌다면 밭둑의 벚나무처럼 깔축없이 견디게 된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인생 나무의 뿌리가 한 마디쯤 더 뻗어나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무는 또 보이지 않는 뿌리와 하늘로 뻗은 가지의 면적이 같다고 한다. 그래야 꽃을 피우고 태풍에도 무사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 인생나무 또한 뿌리심을 키우는 게 관건이다. 아울러 우리 삶의 뿌리가 역경이고 시련이라면 불행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할 때도 타박할 것만은 아니다. 살면서 오히려 뿌리심을 키우는 과정이며 그로써 불행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뿌리가 죽으면 꽃과 열매도 시드는 것처럼 우리 인생 저변에 뻗어나갈 불행과 시련의 뿌리야말로 소망과 기쁨으로 자리 잡을 테니까.

새삼스럽게 벚꽃이 예쁘다. 이제 꽃이 지고 버찌가 달리면 새들이 와서 노래하겠지. 불현듯,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메시지가 들린다. 열심히 했는데도 대가가 없을 때는 그렇더라도 말없이 참고 일하는 자세가 아름답다. 잎은 물론 꽃이나 열매까지 달아 즐겁게 하는, 그게 목적은 아니지만 저절로 그리 되는 원초적 힘을 깨우치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