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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여름이 되면 풍경이 바뀌기 시작한다. 갈수록 무더워지는 5월, 초여름 신록은 간 데 없이 진초록 일변도가 된다. 이팝꽃과 조팝꽃은 진즉에 떨어지고 송화꽃에 이어서 아카시아가 뽀얗게 피었다. 그 다음 곳곳에 새하얀 망초대가 구슬픈 느낌으로 망울이 벌어지곤 했다.

자연은 위대한 화가였다. 밤으로 지웠다가 아침이면 색다른 배경을 그려 넣는다. 언제 데생을 하고 채색하는지 알 수 없으나 날마다 바뀌고 철철이 달라진다. 봄이 떨어뜨린 바톤이 있어 여름에도 이따금 보리누름 추위가 온다. 그런 식으로 가을이지만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것도 비슷한 유형이다.

구름이 두터워지면 장마가 시작되었다. 천둥이 치면서 하루에도 수차례 비가 쏟아진다. 무덥고 습한 날씨 속에서 금방 가을이 되고 잠깐 새 겨울로 접어든다. 풍경에 비해 계절의 구분은 애매했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나중에는 쥐어짜야 될 정도로 뚜렷해진다.

어느 날은 화필을 놓은 듯 무료한 풍경이 전개되고 마음까지 우울해진다. 괜히 짜증이 나고 답답해지는 날씨가 있다. 똑같은 풍경이라면 싫증이 나게 된다. 구색이나 맞추듯, 가끔은 흐리거나 계속 비가 오거나 무덥기도 하지만 그래서 변덕맞은 날씨도 필요하다. 비가 쏟아지고 태풍이 지나가야 하늘이 맑아지는 것을 잊고 사는 격이다. 뚜렷하지는 않아도 흐리고 맑은 날씨에 비도 내리면서 보이지 않는 경계를 드러낸다고나 할까.

오래 전 그림을 배울 때의 일이다. 지금도 그림에는 서투르지만 밑그림의 경계가 유달리 뚜렷했다. 개울은 물론 언덕이며 수풀이 겉돌았다. 어디서부터 언덕이고 골짜기인지 모르나 은연 중 산이 되고 숲이 되는 물처럼 경계 없는 풍경을 담지 못하고 빛깔과 구도에만 집착했다. 풍경을 살리는 것은 좋은 밑그림이되 뚜렷하기만 해서는 어색하게 보이고 잘못 망칠 수 있다.

경계는 애매한지 몰라도 겹치는 부분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이렇다 할 문제는 없다. 반대로 경계가 뚜렷할 때는 겹치는 부분이 너무 짙어서 은연 중 겉돌게 된다. 잘못된 인식은 살면서도 뜻하지 않은 여파를 드러냈다. 무슨 일이든 원만한 해결책보다는 구분이 확실해야 된다고 고집하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색깔만 그럴듯하게 칠하면 되는 줄 착각했던 것이다.

초보일수록 경계에 집착하고 구분을 짓지만 연륜이 쌓이다 보면 있는 듯 없는 듯 뚜렷한 느낌을 주게 된다. 언제 어떻게 절기가 바뀌는지 애매한 가운데 한 달이 되고 철이 바뀌고 마침내 1년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삶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힘들지만 그 묘리를 알게 되는 과정과 비슷했다.

살면서 그림을 그릴 때 역시 수많은 곡절의 표현도 다양해진다. 자연의 풍광보다 변덕스러운 게 마음이고 보면 작업은 방대해진다. 하루라도 손을 놓으면 인생전반의 화폭은 완성되지 않는다. 날씨와 절기에 따르는 자연의 그것처럼 고치고 지우면서 자기만의 초상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주변의 풍경 자체가 그림이라면 바뀌는 모습을 담는 게 버거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매일 보는 풍경을 하루도 같지 않은 면모를 그려내는 자연을 보면 일정 수준은 훨씬 넘어섰다. 위대한 화가로 볼 수 있는 것도 경계를 긋지 않은 채 설정할 수 있는 안목 때문이다. 분명치 않은 것 때문에 보다 확실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나 할까.

봄의 꽃이나 가을의 단풍을 봐도 자연의 풍경은 온통 뒤섞여 있다. 하지만 전혀 어수선하지 않은 점에서도 변화 속의 통일은 드러난다. 연신 꽃피고 지는데도 저마다의 색과 분위기는 뚜렷하다. 우리들 개성도 모나지 않은 가운데 진면모가 나온다. 이렇다하게 구별되는 것은 없어도 분명히 드러나는 자연의 풍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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