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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요즈음 머리가 자꾸 가렵다. 염색을 할 때마다 알레르기 반응 때문이다. 옻나무만 봐도 달아날 만치 민감성 체질이다. 그런 터에 염색약까지 쓰고 있다. 당연할 수밖에.

맨 처음 옻이 오른 것은 열두 살 때다. 취나물 뜯는 엄마를 따라 갔다 오면 한동안 가려움증에 시달렸다. 얼마 후 들여다보면 벌겋게 돋은 반점이 흉했다. 약도 없이 생짜로 앓으면서도 눈에 띄게 고왔던 옻나무 잎이 떠올랐다. 예민한 사람은 곁에만 가도 가렵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있다가 뜻하지 않은 홍역을 치렀던 것이다.

은행나무에서도 옻이 오른다. 시댁에서는 해마다 은행을 말렸다. 곰삭게 뒀다가 개울에서 씻어 오곤 했다. 바구니에 은행을 넣은 채 흔들어서 헹구는 것인데 김장철에 다시 꺼내 쓰면서 사달이 난 걸 몰랐다. 토란국 끓일 때도 두드러기가 번진다. 보통 들기름에 볶다가 끓이는데 장갑을 끼어도 소용없다. 그나마 내성이 생겨 은행이든 토란이든 먹어도 괜찮아졌다.

혈압이나 알레르기만 없으면 옻나무만치 약효가 뛰어난 것도 드물다. 특별히 옻닭은 위가 약한 사람들이 건강식으로 섭취하는 일이 많고 옻나무가 주재료다. 가구 중에서도 옻칠을 한 게 특별히 고급스럽다. 독을 유발할 정도의 끈끈한 진액이 또렷한 빛깔로 드러나는 것인데 누군가는 직접 순을 따거나 삶아 먹기까지 한다.

곁에만 가도 옻이 오르는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밤나무 잎을 달여 먹거나 그 물로 씻어도 옻에 대한 면역이 생긴다니 별나다. 은행나무도 벌레가 꾀지 않을 만치 독성이 강하지만 가래를 삭히는 거담제로 쓰인다. 순이 나올 즈음 무심코 건드릴 때도 옻이 오를 정도인 것을 보면 독으로 독을 물리치는 것일까. 나 같은 경우 특이한 체질이기는 했지만.

독성이 강한 그들 나무는 또 약속이나 한 듯 예쁘다. 옻나무만 봐도 이상하게 눈길을 끌곤 했었지. 어린 마음에도 핏빛처럼 노을빛처럼 붉은 빛깔에 반했을 거다. 은행나무가 물들기 시작하면 허공에 금덩이가 반짝이는 듯 환상적이다. 늦가을 잎이 떨어질 때는 노란 카펫을 깔아놓은 듯, 금돈을 쏟아놓은 듯 화려해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뿐 감히 다가갈 수도 없다. 옻이 올라 고생하던 어린 시절 뒷산 기슭에서 유난히 선명한 빛깔에 팔려 가보면 영락없이 옻나무였던 기억도 새삼스럽다.

옻나무든 은행나무든 보기만 해도 옻에 시달리는데 그러면서도 참 아름다운 빛깔에 끌리곤 했다. 하지만 가까이 갈 수는 없으니 또한 당혹스럽다. 좋아하는 빛깔을 생각하면 유감이나 적정선을 지키는 거다. 멀리서 볼 때 찬란할 정도로 아름다운 경지만을 취하고 싶다. 그만해도 충분한 것을 구태여 먹거나 하면서 탈을 자초할 이유는 없다. 수치문제였으리. 어떤 사람은 또 먹어도 괜찮았던 것을 보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여건도 그런 식이라면 윤택한 삶의 모태가 되지 않을까. 살 동안 수많은 역경에서도 거기 든 소량의 행복을 추구하는 셈이다. 잡초를 뽑을 때 이름 모를 야생화도 딸려오는 걸 보면 불행 속에도 행복의 요소는 가미된다. 행복에 대한 만족도와 불행에 대한 거부감을 적절히 아우르면 충분할 거다. 옻에 대한 민감성 반응과는 달리 빛깔만큼은 간절했지 않은가. 힘든 중에도 가끔은 설레던 인생의 한 부분처럼 그렇게.

옻이니 독성에 대해 낙관적으로 바뀐 걸 보면 어릴 때는 꿈도 못 꿀 내성이 생겼나 보다. 옻 때문에 참 어지간히도 힘들었는데 언짢았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한 편 글을 다듬고 있으니 묘하게 수수롭다. 어째 오늘은 머리가 덜 가려운 것도 같다. 머리가 잠잠해졌으니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성미 급한 사람은 먹지 말아야 되는 옻닭의 금기처럼 과격한 기질 대신 우정 차분한 마음을 견지해 본다. 별달리 옻을 타는 것도 남보다 강한 기질 때문에 제 몸 스스로 취한 타개책이었다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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