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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요즈음 들어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평소 음악과 그림을 매치시켜서 움직이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으나 그림이 문제였다. 음악은 다운을 받을 수가 있는데 그림은 아무리 해도 여의치 않았다. 생각 끝에 풍경을 찍어서 컷 그림으로 만들었다.

작업이 훨씬 순조로웠다. 어디서든 다양한 풍경을 연출할 수 있다. 풍경이면 풍경 그대로 작품의 이미지에 맞춰 편집이 가능하다. 언젠가 이슬이 맺혀 있는 잎을 찍어서 현상을 했더니 선인장 비슷한 문양이 나왔다. 확대해서 배경 화면으로 설정하고 사막을 내용으로 한 작품을 편집했다. 전문가들처럼 요모조모 만드는 게 아닌 좋아하는 음악에 사진을 곁들이는 게 전부지만 그만해도 충분했다.

그렇게 만들어서 나의 유일한 독자에게 보내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예쁘고 단아한 영상물을 보는 것 같다'고 좋아하는 분 때문에 특별히 보람을 느낀다. 나보다 훨씬 연배시고 학력도 높은 분이 글귀 하나 빠뜨리지 않고 감상까지 적어 보내신다. 당연히 분발할 수밖에 없다. 세심히 읽는 분을 위해 낱말 하나까지 다듬다 보니 내가 봐도 문장이 깔끔해졌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생각보다는 부족한 글이나마 꼼꼼하게 읽는 정성 때문에 허투루 할 수가 없다.

더욱 고마운 것은 어색한 단락과 미흡한 부분을 지적해 주는 일이다. 아주 특별한 독자를 만났다고나 할까. 많지 않으면 어떠랴. 다만 한 두 명이라도 진심으로 격려해 주는 독자라면 더 바랄 게 없다. 부족한 작품이지만 진정으로 알아주고 정직하게 평가해 주는 게 고맙고 그래서 충분히 만족한다.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 '백아'라고 하는 거문고의 명수가 살았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자신의 음률을 아껴주고 적절히 비평해 주는 '종자기' 때문에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거문고를 잡고 산을 노래하면 "참으로 근사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산이 보이는구나!"라고 말했다. 이어서 강물을 생각하고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기가 막히다.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것 같구나"라고 극찬했다. 거문고 연주도 뛰어났으나 특별한 것은 열심히 들어주는 종자기의 정성이었다.

하지만 종자기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버리고 이후로 두 번 다시 타지 않았다. 친구를 잃어버린 것은 물론 자기의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진 게 더 큰 불행이었다. 진정한 친구를 뜻하는 지기지음(志氣知音) 역시 음을 알아주는 존재가 친구라는 뜻이고 '백아절현(伯牙絶絃)' 이라는 이름 고운 숙어도 거기서 나왔다.

내 글에서 용기를 얻는다는 말씀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단순히 나를 인정해 주는 데 대한 고마움보다는 힘을 보태주는 정성에 보답하고 싶다. 대단하게 작품일 것까지는 없지만 나 역시 지금보다 글이 정교해진다면 그분의 힘이다.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한다면 글은 갈수록 다듬어지는 게 아닐까. 어떤 별은 밤늦게 떠서 방황하는 영혼을 밝혀 주듯이 나도 부족한 글귀로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싶다. 초저녁별은 일찍 돌아와서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을 비출 것이다. 그에 비해 깊은 밤 뜨는 별이 또 누군가의 길을 밝혀 준다면 의미가 남다르다.

문득 마무리를 못한 풍경사진이 생각난다. 속히 퇴고를 마치고 작업을 끝내야지. 작품과 그림에 맞는 음악을 찾으려면 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테니까. 내게도 나름 지기지음이 있고 적절한 평을 듣기 위해서 쓰는 글이 있어 참으로 행복하다.

백아의 실력에는 어림없지만 나의 지기지음은 종자기의 역할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자신을 생각하면 송구할 때가 많아도 그분을 위해서 더욱 더 노력하리라고 다짐해 본다. 70이 넘으셨어도 가을이면 은행잎 단풍잎을 말려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분께 고마운 말씀을 거듭 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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