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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4.23 15:09:16
  • 최종수정2023.04.23 15:09:16

이정희

수필가

철쭉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진달래는 찹쌀을 입혀 화전으로 지져 먹는 반면 철쭉은 독이 있어 먹지 못하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꽃이 너무 아름다워 걸음을 멈추게 된다는 척촉(躑躅)이 있고 연달래라고도 부른다는 것은 생소하다. 진달래 다음에 피어서 그렇게 부른 거지만 진달래도 분홍이면 연달래다. 알맞게 붉으면 진달래, 자주색이면 난초 빛 같다 하여 난달래라고 했으니까.

가뜩이나 비슷한 터에 이름까지 겹쳤으나 진달래를 연달래라고 할 때의 연(軟)은 빛깔이 연하다는 뜻이다. 반면 철쭉의 연(連)달래는 뒤미처 핀다는 뜻으로 엄밀히 다르다. 시기적으로도 진달래가 먼저고 철쭉은 나중이다. 진달래는 또 꽃이 먼저 피고 철쭉은 잎이 먼저 돋는다. 진달래는 꽃잎이 얇고 투명해서 소녀 같은 느낌이고 철쭉은 두꺼우면서 끈적끈적한 게 진달래와는 딴판이다. 진달래는 참꽃이고 철쭉은 독성이 있는 금기의 꽃으로 알려진 배경이다.

신라 시대의 헌화가에 등장하는 꽃이 진달래인지 철쭉인지 논란이 분분한 것도 그 때문이다. 여러 가지로 비슷한 중에도 진달래가 압권인 것은 성분이 순해서 핀으로 꽂거나 머리 장식을 하고 꽃병에 꽂는 일이 많은 까닭이다. 순하다는 것은 독이 없다는 뜻이고 헌화가에 등장하는 수로부인 역시 보통 여자들처럼 진달래를 원했을 거라는 의미다.

철쭉과 진달래처럼 비슷한 게 있다면 모란과 작약이다. 도란도란 비스무리하게 피는데다가 똑같이 약재로 쓰인다. 모양까지 흡사하나, 작약은 해마다 새순이 올라오는 풀이고 모란은 줄기에서 싹이 트는 엄연한 나무다. 모란을 달리 목단이라고도 할 때 나무 목(木)이 들어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앉으면 모란이요, 서면 작약'이라고 똑같이 고운 자태를 자랑한다. 단지 모란은 청초한 게 진달래 비슷하고 함박꽃이라고도 부르는 작약은 육감적인 철쭉과 어지간하다.

피는 시기도 모란이 먼저고 작약이 나중인 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는 진달래와 철쭉을 닮았다. 어쩌다 썰렁한 날 모란이 피고 뒤미처 작약이 봉오리 질 때 따스해지면 맞물려 피기도 했다. 확실한 방법은 독성의 유무지만 그도 애매한 게 신라 때 들어 온 모란꽃 병풍을 보고 덕만공주가 향기 없는 꽃으로 단정했다는데 실제로는 향기가 있다니 뜻밖이다. 하지만 모란 병풍에는 왜 나비를 그려 넣지 않았을까.

당시 중국에서는 빛깔 고운 모란을 개량하다 보니 향기 없는 꽃이 다량으로 퍼졌고 그게 신라에까지 들어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향기가 있었다 해도 나비는 우정 그려 넣지 않았다고도 한다. 모란의 꽃말은 부귀영화고 나비는 80을 상징했다. 여든까지만 살라는 것처럼 억지스러워 모란 그림에는 나비가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납득이 가긴 했으나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약초라서 소량의 독성은 함유되었을지언정 향기는 있기에 나비는 찾아오련만 모란 하면 향기 없는 꽃이 떠오르는 괴리가 당혹스럽다. 진달래와 철쭉이 피는 시기가 불청객 꽃샘 때문에 봄인지 겨울인지 모를 혼란의 연속이듯 모란과 작약이 필 때도 봄인지 여름인지 애매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항해하는 배가, 표류하면서 정확한 항로를 찾는 것처럼 그로써 작약이 지고 비로소 여름이 된다는 사실이 명확해지지 않을까.

진달래도 난초같이 진할 때는 난달래라고 한 것처럼 철쭉 기질이 다분하고 진달래처럼 연한 철쭉도 있다. 빛깔 짙은 모란은 작약과 비슷하고 작약도 흐릿한 것은 모란과 어지간하다. 3월 말부터 6월까지의 꽃 그래프는 독성의 유무는 물론 빛깔의 농담까지 정확히 기입할 때라야 파악이 가능하다.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뭐가 뭔지 어수선하지만 세상은 OX 문제가 전부는 아니다. 이 편도 저 편도 아닌 애매한 속에서 드러나는 섭리도 무시할 수 없다. 복잡하기는 해도 그런 속에서 형성되는 정확성이야말로 더 이상의 혼란을 막는 유일무이 방법인 것을 깨우친다. 해마다 혼란의 강여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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