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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골짜기를 돌아가는데 흙내가 싱그럽다. 봄비가 내린 뒤 촉촉해졌나 보다. 이제 얼개미로 친 듯 부슬부슬해지면 농부들은 씨를 뿌리는 등 농사 준비에 바빠질 거다. 봄도 땅내를 맡아 푸르러질 테니 식물을 자라게 하는 위력이 참 대단하다.

얼마 후 길섶으로 탐스러운 쑥이 보였다. 낙엽 쌓인 거름더미에서 잎이 무척 실했다. 호미를 댈 것도 없이 푸슬푸슬한 흙은 금방 뒤집어졌다. 싱그러운 내음에 한 뿌리 캐 갈까 했더니 아닌 것 같다. 자라기는 해도 구수한 땅내는 맡지 못할 테니까.

야생화를 분에 옮겨도 시들시들 죽어버리곤 했다. 취나물 역시 화분에 심어 봤자 산에서 뜯어온 것만은 어림없다. 비좁은 건 물론 같은 흙이라도 깊은 골짜기에서 캐 먹는 맛은 아니다. 그건 알지만 구수한 땅내는 번번이 캐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땅내는 그만치 강렬한 것일까.

어디 나물뿐이랴. 시멘트 공간에 사는 우리 역시 자연을 외면하고 겉돌면서 스스로의 건강을 잃어가는 것 같다. 지금도 1시간 남짓 걷고 있는데 발이 아프지 않다. 시멘트 길이었다면 30분도 못 가서 지쳤을 거다. 흙내 물씬 나는 산길이라 오래 걸어도 무리가 없는 걸 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오솔길 풍경이 고즈넉하다. 따스해지면 꽃도 피어나겠지. 산새가 풀씨를 쪼고 쉬어갈 동안 않고 봄은 점점 무르익을 텐데 언제 도로가 날지 불안하다. 그러다 보면 오솔길 한번 마음 놓고 걸을 수 없이 마음까지 각박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문득 복잡하다.

정말 그럴 것이다. 요즈음에는 무릎 수술을 한 노인들이 많다. 이전에는 흔치 않은 질병이었다. 나이 탓도 있지만 젊은 층에도 꽤 많은 추세라고 한다. 운동량이 적고 어쩌다 걷는 길도 대부분 시멘트 길이다. 운동은 부족해도 흙이나마 밟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등산로와 산책길을 제외하면 이래저래 힘들다.

어린이들은 또 아토피 성 피부가 흔했다. 선천적인 경우도 많지만 일부는 환경적 요인이지 싶다. 흙벽돌집은 비가 오면 수분을 머금고 건조할 때는 수분을 뿜어 주면서 습도 조절이 된다. 집도 숨을 쉰다는 뜻이다. 주택은 그나마 덜하지만 현대식 고층 아파트는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깔끔하고 쾌적해서 주거공간으로는 최고 좋아도 땅을 밟지 못해서 탈이라면 한편으로는 유감이다. 땅내를 무시하고 흙을 외면해 온 탓이다. 여건은 상관없이 건강 유지는 자연과 가까워질 때가 최적이었다.

우리말에 그 뉘앙스가 많은 것도 우연은 아닐 거다. 땅에 기둥을 박아 만든 그네는 땅그네, 도자기를 만들 때 흙을 가라앉히는 구덩이가 땅두멍인 것도 그렇다. 두릅도 나뭇가지 말고 지표면에서 싹튼 것은 땅 두릅이다. 작은 땅강아지가 땅에 붙어 있는 것도 보면 해학적인 이름이었다. 3cm 남짓 되는 그 곤충은 땅개라고도 불렀으니까.

어느 덧 땅내 그리운 나이가 된 것일까· 오늘도 봄과 함께 풍겨오는 땅내를 맡고 뒷산에 올라왔던 거다. 창가에 비쳐드는 봄볕은 아침부터 눈이 부셨다. 화단의 새싹도 흙을 뚫고 뾰조록 나왔다. 어디라 할 것 없이 나들이가 생각나고 뒤숭숭했다. 봄바람 때문인지 땅을 밟는 느낌도 부드럽다.

멀리 저녁 해가 뉘엿뉘엿하다. 주위가 보랏빛으로 물들더니 땅거미가 번진다. 낮도 밤도 아닌 채 해가 지고 깜깜해질 때까지의 어렴풋한 기운이다. 뒤미처 노을은 간 데 없이 한 마리 거미처럼 온통 저녁을 휘감는 게 오늘 따라 묘하다.

어스름 초저녁에서 밤으로의 이동 때문인지 넘어가는 태양조차도 서성인다. 그렇더라도 밤은 시작되리라. 어렴풋한 가운데 어둠을 살라먹고 아침을 토해 내는 배경이 모처럼 수수롭다. 세상 어떤 병란도 아랑곳없이 살아남는 저력은 그렇게 나왔을 거다. 오늘 하루가 무척이나 희망적이었던 배경을 생각하니 마음도 봄볕처럼 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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