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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2.27 17:13:59
  • 최종수정2020.02.27 17:13:59

신한서

전 옥천군친환경농축산과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올해 3.1절 기념식을 대폭 축소한다는 소식이다.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신 수많은 선열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이명(耳鳴)처럼 귓전을 맴돈다.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침략한 후 맨 처음 시작한 일이 바로 토지조사 사업이다. 조선총독부는 1912년 8월 13일 관보에 토지조사령을 발포한다.

전국 토지를 측량하여 선을 긋고 지적도면을 작성해 지번을 부여했다. 그 후 8년간에 걸쳐 토지조사를 마무리한다.

일본지형에 적합하도록 동경(東京) 원점을 사용했다. 이를 기점으로 전국 600여 개의 삼각점을 연결 측량체계를 구축하고 측량을 완료했다. 1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이를 사용하고 있다.

옥천군에서도 토지조사 결과를 근거로 1912년 9월 전.후 토지대장이 최초로 작성돼 오늘에 이른다.

본 토지조사의 목적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땅을 빼앗고자 하는 야욕에서 출발했다. 이 사업의 가장 큰 함정은 기한부 신고제였다. 토지조사령에 보면 소유자는 조선 총독이 정하는 기간 내에 주소, 성명, 지목, 지적(地積) 등을 신고하도록 명시돼 있다.

당시 농민들 대부분은 현재의 등기부에 의한 토지 소유제도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문맹도 많았다. 신고 기간을 의도적으로 짧고 복잡하게 해 일반 농민들이 신고하지 못하도록 유도했다. 또한 일본인들에 대한 반발심으로 신고를 기피하기도 했다. 바로 이점을 일본인들이 노린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이어온 관습적인 경작권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모두 땅을 빼앗기게 된다. 신고하지 않은 땅, 공동소유, 관청, 왕실, 문중 소유 땅은 모두 조선총독부로 귀속됐다.

빼앗은 땅은 일본인에게 싼 가격에 불하했다. 상당한 금액의 영농자금까지 지원해 주었다. 그 결과 얼마 되지 않아 최대의 곡창지대 호남평야는 일본인들이 독차지하게 됐다.

이때부터 조선 농민들 대부분은 60%에 달하는 높은 소작료에 시달리게 된다. 소작농이나 유랑농 신세가 되어 만주나 일본 등 해외로 떠돌게 된다. 나라 잃은 국민의 슬픔을 온몸에 짊어지고평생을 살아야 했다.

토지조사령에 보면 토지 소유자는 사방 경계에 말뚝(標地)을 세우도록 했다. 규격은 4척(尺) 이하로 1척(30㎝) 이상 땅에 박도록 했다. 이 말뚝에는 군, 면, 리, 평, 지번, 지목, 소유자 주소 성명을 기재하도록 했다.

여기서 본격적으로 일본인들이 숨겨둔 발톱을 들어내게 된다. 신고하지 않은 땅, 소유자가 불분명한 땅, 평소 욕심이 나는 땅은 '조선 총독부 말뚝'을 박는 방식으로 토지를 강제로 빼앗아 갔다.

또한, 토지조사를 위해 조선총독부 산하에 '무장조사단'을 구성했다. 조사국 출장원, 경찰 헌병, 면장, 이.동장, 지주 총대 등 총 12명이었다. 이들은 출장할 때 권총과 대검은 물론 망원경, 측량기를 갖고 다녔다.

토지조사가 마무리된 1919년 2월에는 조선농민 80%가 소작농으로 일제의 수탈정책에 시달리게 된다. 이때부터 조선총독부의 조직적이고 무력적인 탄압과 소작농 착취가 본격적으로 벌어진다. 토지조사사업으로 조상대대로 경작해오던 땅을 빼앗긴 농민들의 분노와 억울함이 바로 3.1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이라는 일부 주장이 힘을 받는 대목이다.

3.1 절을 맞아 110년 전 4척(120㎝)의 '조선총독부 표지(標地) 말뚝'을 바라보며 절망에 빠졌던 선조 농민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미세먼지처럼 가슴이 답답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조선총독부를 통하여 얼마나 많은 횡포와 침탈을 했는지, 나라 잃은 고난과 슬픔으로 조상들이 흘린 눈물이 얼마나 많을까. 우리 모두 3.1절을 맞아 다시한번 가슴깊이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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