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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청주중앙여자고등학교 교사

1번 54, 2번 49, 3번 60……38번 62!

1번부터 38번까지 숨도 쉬지 않고 쭉 이어간 선생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드디어 멈춘 순간, 방금 체력장을 마친 고등학교 1학년 남녀합반 이 교실의 분위기가 싸한 게 어딘지 심상치 않다. 남학생들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있는 땀방울보다 더 그렁그렁한 여학생들의 눈동자와 숨을 쉬지 않은 것은 선생님만이 아니었던 듯 하얗게 사색된 여학생들의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 막 교사 1년차인 새내기 남자 선생님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니?"라는 질문에도 꿋꿋하게 복잡미묘한 표정만을 발사하는 여고생들에게 해석 불가 판정을 내린 선생님은 등 뒤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교실 문을 나선다.

'너희들은 도대체 어느 별에서 온 거니?'라며 어려운 여고생의 세계에 아리송해 하던 새내기 남자 선생님이 10년차 옆 반 여자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려는데, 방금 체력장에서 측정한 키, 몸무게 등등을 학생별로 하나씩 오리고 있는 선배 선생님의 정성스런 작업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다.

"여학생들은 성적표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이 몸무게 공개에요. 이렇게 개인별로 하나씩 오려서 비공개로 확인해야 한다니까요."

아차! 소중한 비밀로 간직해줘야 할 예민한 여고생의 몸무게를, 그것도 남학생들이 다 있는 곳에서, 혹여나 틀리게 부를까봐 또박또박 그것도 쩌렁쩌렁하게 외쳐댔으니 섬세한 여학생들이 토라질 만도 하다고 자책한 새내기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든 여린 여학생들의 마음을 다독여야 하겠다고 다짐하고 이런저런 멘트를 준비하고 교실로 향한다.

"너희들의 몸무게는 여고생으로서 지극히 평균적인 몸무게이니 걱정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너희들의 개인 정보를 공개적으로 밝혀서 불쾌한 학생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교실 안에서 '몸무게'를 화두로 한 열띤 토론을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다. 처음에 이 선생님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몸무게를 공개적으로 밝힌 선생님에 대한 원망의 뒷담화를 예상했으나 실제로 교실 안에서 오고가는 발언들은 선생님의 뒤통수를 치는 의외의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학생들 사이의 정당함에 대한 논쟁이었는데,

"너희들은 왜 약속을 어기니?"

'약속은 지켜야지. 역시 대견한 우리 학생들! 그런데 몸무게? 무슨 약속?'

"우리 모두 자기 몸무게에서 2㎏만 빼자고 약속했잖아."

'이 녀석들! 몸무게를 단체로 속이려고 했는데 정직한 학생들이 반기를 들었구나.'

"그런데 왜 5㎏을 뺀 거냐고!

'이런.'

"이거는 정당하지 못해! 2㎏이랑 5㎏이랑은 하늘과 땅 차이잖아!"

'우리 학생들! 2㎏과 5㎏ 중에서 정당한 게 도대체 뭐니?'

몸무게가 공개될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학생들의 얼굴을 사색이 되도록 만든 것은 선생님의 개인 정보 유출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정당함에 관한 기준 때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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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