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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청주중앙여자고등학교 교사

우리 반 학생들이 모두 사이좋게 지내길 바라는 것은 모든 담임교사들의 희망일 것이다. 몇몇이 똘똘 뭉쳐서 소그룹으로 짝을 짓고 배타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모두가 피해자라고 외치는 여학생들의 따돌림 문제를 접했을 때 교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을 것이다.

여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세력다툼은 남학생들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남학생들은 대부분 하나의 공동체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한 반면, 여학생들은 두서너 명씩 또래집단을 형성하면서 짙은 폐쇄성을 드러내곤 한다. 마음이 통하는 여학생들은 얼마간 강한 유대감으로 같은 편이 되었다가 곧잘 해체되고 새로운 그룹을 형성하는 과정을 빈번하게 거치면서 여러 형태의 따돌림과 뒷담화가 횡행하게 된다. 따돌림의 원인과 현상,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방어 기제에도 차이가 있다. 주로 자기보다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형태인 남학생들의 왕따는 엄격한 서열 관계에 따른 신체적인 폭력과 육체적인 조종 등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여학생들의 왕따는 자기가 갖지 못한 부분이나 자신과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심리적인 갈등으로 의도적인 외면 현상이 주를 이룬다. 여학생들의 왕따는 신체적인 폭력보다도 더 깊고 은근하며 지속적으로 피해자에게 고통을 준다. 여학생들은 그들이 따돌리는 대상에 대해서 따돌림을 당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은 그 아이의 버릇을 고쳐주는 정당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매우 당당해 보일 때마저 있다.

뭉치고 흩어지는 '관계' 속에서 주로 생기는 여학생들의 갈등,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또 한편 바로 그 '관계'가 있다는 것이 어쩌면 다행일 수 있다. 왜냐하면 얽히고설킨 촘촘한 여자 아이들의 따돌림 문제에서 관계지향성은 지혜의 실타래가 되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가 해야 할 일은 강요나 훈계보다는 아이들 모두가 '따뜻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 아이들 모두가 차이를 인정하고 개성을 존중하며 다름을 이해한다면 누군가를 따돌리는 일이 어떤 경우에서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예민하고 복잡한 여학생들의 관계 형성을 위한 선생님들의 다양한 노하우가 있겠지만, 나는 여기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잠시 커닝해 보기로 한다. 순서를 바꿔 잘못 읽으면 나야미[고민]로 읽히는 나미야 할아버지에게 어느 날 장난스런 고민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편지의 내용은 "공부는 하기 싫은데 시험에서 만점 맞고 싶어요."였는데 "선생님께 부탁해서 당신에 대한 시험을 치게 해달라고 하세요. 그러면 백 점 만점을 받을 수 있어요."라는 어처구니없는 답장을 받게 된다. 국어나 산수에서 만점 맞는 방법을 알고 싶었던 이 학생은 훗날 선생님이 되는데, 친한 친구 이외에는 데면데면한 교실 분위기로 고민하던 중에 나미야 할아버지의 편지가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학생들에게 그 편지에서 얻은 아이디어인 '친구 시험'이라는 재미있는 필기시험을 치르게 한다. 이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 비결은 딱 한 가지, 반 친구에 대해 잘 알아두는 것이었다. 이 엉뚱한 시험 앞에서 처음에는 당황하던 학생들은 시간이 갈수록 서로서로 긴밀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2015년 어느 날, 나 역시도 우리 학생들에게 '내 친구 알기 시험'을 치른 적이 있다. 그리고 어떤 선생님들은 따뜻한 관계 형성을 위한 또 다른 방법들을 시행하고 계셨을 것이다. 시험을 치르고 난 후에 총명한 나의 학생들, 그리고 또 다른 선생님의 학생들은 그것의 의도를 알아챘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상하지만 따뜻한 이 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것이 국어나 산수에서 만점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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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